초등학교 3, 4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큰 언니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은지 몇 개월이 지났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를 탓하며 다투시던 부모님. 술로 하루를 버티는 아버지와 눈물로 하루를 좀먹던 엄마. 그 생활이 1년 가까이 지속되니 엄마는 스스로 겨우 붙들고 있던 기대의 끈마저 놓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예감, 직감이 좋았던 나. 엄마를 찾아야겠다는 육감은, 내가 어떤 생각을 인지하기도 전에 나를 이미 엄마 앞으로 대려다 놓곤 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나의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그런 예감이 적중이라도 하듯 그때마다 엄마는 약을 먹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기억나는 횟수로만 세 번의 시도를 말렸고, 다행히도 엄마는 여전히 내 곁에 살아계신다. 물론 그 덕에 내게 엄마의 목숨은 때때로 볼록하게 올라온 입 안의 혓바늘처럼 따꼼거리거나 불편한 어떤 것이 되었다.
"하늘에서 큰언닐 지키려고 죽으려 했다고? 그럼 우린... 그럼 우리는..? 엄마는 자식이 큰 언니밖에 없어? 나머지 우리들은 엄마에게 뭔데?"
초등학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니. 그래, 비록 쪼꼬미였지만 그때의 나도 지금만큼이나..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생각도 많은 아이였지...
세상에 '모정'보다 더 깊고 무한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을까. 한데 그런 부모도 나를 두고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충격은 금방이라도 내가 사는 세상이 어그러질 듯한 불안을 안겨다 줬다. 여러 번 반복된 학습으로 굳혀진 어떤 확신은 나를 누구도 믿지 못하는 차가운 아이로 만들고 있었다.
"부모도 나를 버릴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인데.. 그 어떤 이가 건네는 마음이 그리 큰 진심이겠어? 사랑이란, 마음이란 생각보다 가볍고 쉽게 변하는 거야.. 그런 걸 거야"
내 의식이 그렇게 되뇌어도, 저 깊고 깊은 무의식은 내 생각이 틀렸단 걸, 사실이 아니란 걸 수없이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난 사람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대인관계를 맺거나 이성을 만날 때도 그 순간엔 진솔했지만 결국엔 마음을 백 프로 열고 주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나도 몰래 그어놓은 그 네모난 선 밖으로 한 발을 쉽게 내딛지 못했다. 아마도 그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작동된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었으리.
나는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기 위해 엄마의 안위를 살피고 가족들의 마음을 살피며, 엄마의 밑 빠진 마음의 독이 완전히 고갈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가족들의 걱정을 살피고 보듬으며 엉성하고 약해진 울타리가 작은 비바람에도 무너질세라 늘 보초를 섰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가족들의 '걱정인형'으로 살아가길 자처했다.
수년 동안 엄마를 믿지 못했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를 사랑했지만, 많이 원망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