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세상으로 나갈 채비

by 윤슬


"집에만 있는데 매일 화장은 왜 해?"


집에만 있어도 매일 씻고 화장하는 나를 신랑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씻고 화장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게 화장은 불행하지 않다는 의미이고, 아직은 삶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 엄마는 매일 아침 단정하게 씻고 곱게 화장을 했다. 어린 나는 '매일 화장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을 수 조차 없었고 그저 나도 화장을 하면 엄마처럼 예뻐지겠지 했던 순수한 기억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화장을 한 공주 같은 엄마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언니의 가출을 시작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불행이 들이닥쳤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엄마는 그즈음부터 화장을 하지 않았다. 큰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까칠한 맨얼굴만 보여주는 엄마가 내겐 초라하고 외롭게 비쳤다. 그런 시린 마음의 감각이 좋았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다짐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한결같이 화장을 하겠노라고. 아마도 나는 엄마처럼 초라하고 외로운 어른이 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성인이 되고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신조를 지켰다. 속사정을 모르는 가족과 지인들의 눈엔 조금은 별나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집 앞 마트를 가건, 가까운 마실을 가도 씻고 화장을 하지 않으면 차라리 나가기를 포기했다. 왜 그렇게 맨얼굴을 보이는 게 싫었을까. 연예인병도 아니고 별난 신조를 지켜오던 내게도 화장을 하지 않고 밖에 나가는 날들이 발생했다.








첫 출산 후,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릴 때였다. 엄마는 매일 정신을 놓고 아파하는 내게 바깥바람을 쏘이고 기분전환을 하게 할 심상으로 일부로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삶의 모든 것이 귀찮고 의미마저 느끼지 못했던 나는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 내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살기 위해선 움직일 수밖에. 그렇게 살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었고 화장의 의미와 존재마저 까마득 잊고 던 나는 병을 앓던 일 년 정도의 시간 동안 항상 맨 얼굴로 살았다. 매일 화장을 하던 딸이 화장하기를 포기한 게 안타까웠는지 가끔 엄마는 "화장도 좀 하고 그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화장을 하지 않는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더 마음 아팠을 내 엄마. 우리는 늘 서로의 아픔을 주고받듯 비슷하게 겪는 아픔이 유독 많았다. 전생이 있다면 무슨 인연인지 가끔은 정말 궁금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치료의 효과도 시간으로 증명되고 병증이 서서히 낫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잊고 있었던 사실을 자각했을 때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직접적인 경험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젠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왜 엄마가 화장을 영영 잃었는지. 어쩌면 짐작으로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이었으리라.


병이 낫으면서 자연스레 삶의 의미도 찾은 나는 다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화장은 나에게 누구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를 뛰어넘었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그 이상의 치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곱게 화장을 한다.








모두가 당장 삶의 의미와 생존의 이유를 도둑 맡는다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말, 사소한 몸짓의 이유마저 무의미해짐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장이 아니라 그 무엇이 되었건, 자신에게 투자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들인다는 건 내 삶이 아직은 충분히 의미 있기에 가능한 행동 들이다.


나에게 '화장'이 그러하다. 내 삶은 여전히 살만하고, 아직도 삶의 열정을 잃지 않았기에 매일 아침 화장으로 세상에 나갈 채비를 돕는다.


모두들 삶을 이끌어가는 의미와 열정이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이 식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미묘한 차이는 오직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어떨까?



나는 여전히 삶에 열정적일 채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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