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들을 찾습니다- 2

사라진 파편을 찾다

by 윤슬


출산 후 수 없이 두려움을 피해 죽음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죽음이 이렇게 현실적이고 절실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차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고 스튜디오에 금방 도착했다.


나는 영혼이 없는 눈으로 스튜디오에서 시키는 대로 50일 촬영을 겨우 마쳤다. 잠시 대기하는 동안 스튜디오 측에서 아이의 첫 탄생부터 50일까지 찍은 사진들을 이어 영상처럼 만들어 틀어줬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이란 노래와 함께.


그제야 내 아이가 보였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서움에 정신이 빠져 이 예쁜 아이를 보지 못했다니. 자책감과 슬픔, 오만 감정이 밀려와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렇게 아이 50일 촬영 날,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후 부모님이 오랜만에 집에 오셔서 하룻밤을 머무르셨다. 다음날 집에 가려는 엄마를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도움을 청했다. 그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걱정할 가족들에게 힘든 걸 말하지 못했다. 고백하는 순간 나약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적인 증상이 시작되고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모든 걸 고백했다. 듣고 있던 가족들은 당혹스러워했고 엄마는 소리 없이 우셨다.


사실 산후우울증을 앓으면서 엄마를 참 많이 원망했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자살시도.. 그리고 나의 임신. 출산 시기와 딱 맞춰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그녀가 나는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나약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강한 엄마가 되지 못할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때 나와 엄마는 동시에 마음의 치료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절실히 필요했고 엄마 또한 딸을 위해 아픔을 뒤로하고 함께 해 주기로 했다. 심각성을 감지한 엄마가 신경정신의학과라도 가보자고 하여 그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경정신의학과를 방문했다.


병원에선 출산 후 호르몬 변화로 오는 극심한 산후우울증으로 진단을 내려줬고 약물치료를 권했다. 그렇게 신경정신의학과 치료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방치해서 키운 병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 나 못 참겠어. 엉- 엉-"


아무 맛도 없는 모래알 같은 음식을 씹어 넘길 때도,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매 순간 죽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다. 누군가 머릿속 불안 스위치를 켜놓고 끄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살아내야 했고, 살기 위한 노력만큼 절실한 노력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을 치료했고 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둘째 때도 같은 날 똑같이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경험에 의한 빠른 대처로 6개월 치료 후 나을 수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의 일들임에도 나는 그 기간 동안 밥은 했는지, 청소는 했는지, 무얼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전에도 산후우울증을 겪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분명 같은 이야기인데 쓰면 쓸수록 조금씩 사라졌던 기억들을 찾고, 엉킨 순서를 바로 잡고,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최근 들어 나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나는 특별히 더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 어린날의 기억들도 부분 부분 남아 있을 뿐 나의 과거를 떠올리면 온통 성애로 가려져 뿌옇게 느껴질 뿐이다. 이제는 이 답답하게 낀 성애를 닦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한 작가님께서 나에게 이런 답글을 달아주셨던 적이 있었다.


"작가님도 혹시 증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글을 만났을 때 마구 쓰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희열을 맛보게 된 걸지도 몰라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너무나 멋진 문장을 선물로 받은 것에 마냥 벅찼던 기억이 있다. 사실 지금도 증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글을 계속 쓰고 있는 이유 정도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기쁨을 쓰면 기쁨이 배가 되었고, 아픔을 쓰면 아픔은 치유되었다. 쓰면 쓸수록 아픔은 글에 묻어 사라지고 나는 쓴 만큼 조금 더 행복해져 있었다.


더 많이 쓰고, 쓰는 만큼 더 행복해지고 싶다.


나는 어린 날부터 지속적으로 일어난 위험한 자극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외부 자극 때문에 생긴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기억들을 스스로 지운 게 아닐까.

어느 날 문득 꿈에서라도 잃어버린 파편들을 만난다면 이젠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꼭 기록하리라.











"자기야 그때 내가 밥은 해 줬어? 빨래는 하고, 청소는 했어?"


"모르겠어 나도 그때 기억이 잘 안 나네."




우리들이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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