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텅 빈 밥상을 앞에 두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손에는 여러 알의 알약과 물컵을 든 채였다. 그날이 내가 죽고 싶은 엄마를 말린 첫 번째 날이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와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다신 그러지 않기로 나와 단단히 약속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조용한 날이 지났다.
하지만 엄마는 늘 멍한 상태로 초점을 잃고 위태로워 보였다.
햇볕이 너무 좋던 여름날이었다.
나는 또다시 순식간에 이름 모를 불안에 휩싸였고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금세 마당 한편 창고 쪽에서 엄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의 그때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선 양손엔 약과 물컵이 들려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엄마의 자살시도를 막은 두 번째 날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엄마의 약속을 믿지 않게 되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온 가족이 점점 불안하고 우울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엄마가 일기장과 펜을 내게 달라고 하며 말했다.
"엄마 큰방에서 잘 거니까 깨우지 마. 잠 좀 푹 자고 싶다."
평소처럼 또 일기를 쓰고 좀 주무시겠거니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또 어떤 불안이 나를 안으며 다가온다. 그러자 난 불안의 원인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둘째 언니를 대동에 큰방에 같이 들어가 주길 청했다. 원인을 모르는 언니는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나와 같이 방엘 들어가 주었다.
엄마는 다소곳이 누워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언니에게 베개 아래를 들춰보라고 부탁하자, 베개 아래에서 엄마의 일기장이 나왔다.
"경이 아빠 나는 하늘나라에서 경이를 지켜 줄게요.
이 생에선 찾지 못할까 두려워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어요.
너무 많은 짐들을 남겨놓고 먼저 가서 미안해요.
남은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해요."
엄마의 유서였다.
아빠는 엄마의 따귀를 있는 힘껏 때려보고 흔들어도 보았다.
그러나 엄마는 깨어나지 않았다.
시체처럼 무거워진 엄마가 질질 끌려 아빠 차에 실어졌다.
엄마는 다행히도 간발의 차이로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독한 약에 속이 녹아내린 듯 한동안 음성이 잘 안 나와 쇳소리를 냈다.
나는 아파서 음성도 잘 나오지 못하고 나보다 더 아플 엄마에게 원망의 말들을 쏟아냈다.
"큰언니만 자식이라서 우리를 다 두고 가려고 했어?
남은 우리들은 엄마한테 뭐야? 엉엉~"
방황하던 언니는 2년 뒤에 집에 돌아왔다.
나는 미워서 싸하우기만 하던 언니가 너무 반가웠고, 절로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곤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꿈이 아니길 빌었다.
언니가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선 그리고도 한참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큰언니는 학교에서 오랫동안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동네 오빠들이 성추행을 일삼았다. 그 나쁜 놈의 시끼들은 바지를 내리고 XX라고 하는 등 언니를 자주 괴롭혔다고 했다.
언니에게 사실을 전해 들은 엄마는 그저 화를 내셨다고 했다.
참 안타까웠다. 언니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살기 위해서 나갔다고 했고, 듣고 보니 나름의 이유가 분명했다. 나라도 방법이 없었겠다 싶었고 원망만 했던 나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마음이 아파야 했다. 언니에게 오해가 풀린 동시 쌓였던 서운함과 화는 한순간 눈 녹 듯 녹았다. 이런 게 물 보다 진한 핏줄이 아닐까.
우울은 완치가 어렵다.
우울은 여전히 계절을 잃은 감기처럼 내게 자주 왔다 간다.
나도 엄마도 가족들도 그렇다.
우리 가족들은 현재 네 명이나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기도 하다.
엄마는 우울증이 여전히 심해서 공황장애를 앓고 계신다.
요즘은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차박을 하거나 가출을 반복하고 계시며, 가족마저 엄마를 시험한다고 생각하시기도 한다.
어떤 날은 멀쩡하고, 또 어떤 날은 너무 이상하다.
엄마는 이런 힘든 나날을 반복하고 계신다.
물리적인 힘을 가해야 꼭 가정폭력이 아니다. 나는 맞지 않았지만 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커왔다. 부모님을 사랑만 할 수도, 원망만 할 수도 없다. 가족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아파야 했고,
여전히 아프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 '나'를 엄마가 죽으려 했던 그 장소들에 두고 아직 데려오지 못했다.
초점이 없는 엄마의 눈.. 물컵... 알약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나는 죽고 싶던 엄마를 살린 죗값을 하루하루 달게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