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자살시도, 죽고 싶은 사람을 살린 죄 값- 1
사라진, 엄마의 결혼 패물
나의 부모님은 예나 지금이나 늘 근면, 성실, 예의를 중요시 가르치신다. 그런 부모님 아래서 첫째 언니는 너무 갑갑함을 느꼈었다. 큰언니는 심성도 착하고 공부도 잘했으며, 동생들도 잘 돌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귀신이 씐 듯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언니의 방황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남자도 사귀고 술, 담배 그리고 가출을 일삼았다. 그런 언니를 아빠가 수소문해서 잡아오고 또 혼내거나 달래는 식으로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횟수도 늘었다.
그렇게 집안은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언니의 방황으로 우리 집은 마치 검고 긴 터널 안으로 이사를 간 듯했다. 그곳은 어둡고 습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철창 없는 감옥 같았다.
매일 한숨으로 아침을 열던 엄마,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고 하시던 그날 결혼반지와 패물들이 없어진 걸 알게 되셨다. 그리고 전날 큰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렇게 언니는 엄마의 결혼 패물과 같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아빠와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를 탓하며 싸웠다. 아빠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엄마는 매일같이 우셨다. 서로 고성을 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따귀를 때리는 날도 있었다. 내가 맞지 않았지만 나는 폭력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신들을 믿기 시작했다. 어둑한 새벽이면 물을 떠놓고 빌기도 하고, 무서운 그림이 그려진 부적들을 방 모서리마다 두기도 했다. 그 부적은 만져서도.. 밟아서도.. 움직이게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그 부적들이 너무 무서워 가위도 자주 눌렸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즈음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집에 있기도 싫고, 학교를 가기도 싫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일기장엔 온통 큰언니를 향한 그리움과 걱정의 마음들이 일기장 가득 채우고 있었다. 힘들다.. 죽고 싶다..라는 충격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매일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았다. 그 기억으로 나에겐 듣지 못하는 노래가 하나 생겼다.
너그럽게 웃으시는 당신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배웠죠
철이 없는 나를 항상 지켜주시는 하늘처럼 커 보인 당신
우연히 서랍 속에 숨겨둔 당신의 일기를 봤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사는 게 자꾸 힘에 겨워진다고
술에 취한 아버지와 다투시던 날 잠드신 줄 알았었는데
불이 꺼진 부엌에서 나는 봤어요 혼자 울고 계신 당신을
알아요 내 앞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강한 분인걸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 약한 여자라는 걸
알아요 당신 맘을 모두 다 이해해요
믿어요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당신
당신 모습 닮아 갈래요
왁스 노래 - '엄마의 일기' 노래 가사 중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그 시절 엄마의 일기장과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노랠 듣던 그날의 감각, 온도, 냄새를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내겐 지금도 쉽게 들을 수 없는 노래 중 한 곡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점점 더 피폐 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찾아야 한다는 이상한 예감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저 일기장을 훔쳐보았기에 엄마가 걱정되는 것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내 직감은 이미 내 발을 부엌 쪽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
깨어 있는 의식보다, 잠들어 있는 무의식의 무서움을 처음 깨달은 그날,
무의식이 이끈 그곳엔 엄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