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낸 여섯 번째 손가락, 그리고 여전한 환상통- 1

'약'이 되고 싶었다

by 윤슬



"누나가 도움을 주려고 했겠지만,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큰누나에겐 독이란 거 알지?"




몇 해전 남동생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말을 듣던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로 마치 누가 내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가슴속에 하나의 불덩이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이 화를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온통 어질러진 방 안처럼 정리되지 않은 내 감정으론 어느 말 하나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일까. 순식간에 내 마음이 왜 이리도 난장판이 되었을까.

그 물음의 여운이 몇 달 동안이나 내 마음과 생각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나에게 큰언니는 아픈 손가락이다.

보통 아픈 손가락을 얘기하면 자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게 아픈 손가락은 언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여섯 번째 손가락...


어린날 내 기억에 그녀는 자신의 용돈을 아껴 동생들의 과자를 사주고, 누구보다 어린 동생들을 잘 챙기며 성적까지도 우수한 착한 어린이였다. 그런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그녀는 귀신이 씐 듯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남자 친구를 사귀고, 술, 담배도 배우고, 심지어 가출을 반복했다. 당시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그런 그녀가 무척 싫었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 내 신경은 온통 그녀에게 가 있었고, 매일 그녀가 숨겨둔 담배와 숨바꼭질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대부분은 서랍장 위 곱게 개어진 이불들 사이에서 담배가 나왔다. 담배가 발견될 때마다 마치 증오하는 원수를 목 조르듯 두 손으로 담배를 조르고 비틀어 뭉갰다. 그럴 때면 내 손에 졸려 죽은 담배처럼 가끔 나는 그녀의 손에 목이 졸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한참을 몸싸움을 하고야 서로 분이 풀리는 듯했다. 우린 무엇에 목을 조를 만큼 화가 났고, 또 무엇을 그토록 죽이고 싶었을까? 분명 죽이고 싶었던 건 서로는 아니었으리라.


가출을 한 그녀를 아빠가 찾아오는 날엔 ,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나가서 다신 들어오지 마!"


라며 악을 질러댔고, 그녀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집을 생각하면 증오에 가득 찬 막말을 퍼붓기 일쑤였다.









예상대로 그녀는 가출이 잦아지다 결국엔 아예 집을 나갔고, 그날 엄마의 결혼 패물도 함께 사라졌다.


그 후로 부모님은 마치 원수가 한집에 사는 듯 매일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며 싸우셨고 몇 년간 그런 암흑이 지속되자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하셨다. 엄마의 유서와 자살시도를 매번 목격하고 말려야 했던 그 시절은, 가파른 절벽 아래 불구덩이로 던져진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다.


그렇게 죽지 못해 안달이난 엄마를 세 번이나 살려냈고, 결국 매일매일 절망이 그려진 얼굴로 사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그 죄책감과 죗값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수소문하면 찾아지던 그녀는 아무리 찾아 헤매도 소식하나 들리지 않았고 그대로 영영 이생에선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매일 지옥문을 열고 닫으며 학교를 다니던 나는 어느새 그녀가 집을 나갔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은 우울한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하루로 마무리되었던 그날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은 오래된 앨범 속 빛바래 옅어진 사진처럼 내 무의식 속 기억 어딘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깊이 넣어져 있다.





그날 드디어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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