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둘째 아이의 출산으로 수술 트라우마와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첫째 때 1년, 둘째 때 6개월의 기간 동안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우울의 뿌리가 깊은 분들은 호르몬 변화에, 감정의 변화에, 환경의 변화에 취약합니다. 천천히 약을 늘리고, 천천히 약을 끊어야 재발도 적고, 재발 시 치료기간도 짧습니다."
병세가 심해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옆에 몸을 최대한 구겨, 말아 눕고 신랑이 오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어떤 소리도, 내 움직임도, 1분이 몇 년같이 느껴지는 시간도, 밥 맛이 없는 것도, 아이에게 무표정한 나도, 그런 아이에게 언젠가 무슨 짓을 할 것만 같은 두려운 생각도, 때때로 호흡이 곤란한 순간의 불안도 모두 무서웠다. 모든 게 두려워 죽음으로 도망가고만 싶었다.
첫째 아이의 50일 촬영 날, 일가족 모두 차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이기적이고 비겁했으며, 오만하고 어리석었다. 혼자 죽으면 남게 될 아이와 신랑이 눈에 밟혔고.. 그렇게 내가 없어 고통받을 세월을 차마 두고 갈 수 없단 생각을 했다.
병세가 많이 호전된 지금 그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난 그저 병이었다. 모든 계획하에 바라는 대로 착착 진행되던 행복 속에서 너무나 상반되는 감정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다. 머리론 행복한 순간임을 인지하지만 마음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산후우울증, 공황장애, 수술 트라우마, 그로 인한 자살충동. 난 이 길고 끝이 없는 검은 터널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버티다 버티다 종국엔 목숨마저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이들, 신랑, 가족.. 내 소중한 사람들, 참 험난했지만 소중한 내 삶이 죽고 싶을수록 살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되어 날 붙잡았다.죽고 싶을수록 죽는 게 더 무섭고, 죽고 싶을수록 간절히 살고 싶었다.
당시엔 많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야 되니 하루하루, 한 시간 시간, 일 분 일초를 견디고 넘겼다. 많이 회복되고 글로 아픔을 쓰고 복기하며 깨닫는 게 참 많다. 같은 스토리를, 같은 아픔을 벌써 몇 번 썼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쓰면 쓸수록 몰랐던 사실이 보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몇 번쯤 반복해서 쓰였을 때일까.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자식을 두고 죽고 싶은 충동을 겪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늘 불안했던 엄마의 목숨을,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던 그것을 긴 시간을 돌아 드디어 내게서 놓아줄 수 있었다.
사람 목숨이란 게 죽고 싶다고 죽어지지도, 살고 싶다고 쉽게 살아지지가 않더라. 정말 목숨을 얻고 잃는 건 인력 밖의 일이더라. 그래서 죽고 싶은 사람이 고통받으며 더 길게 살기도 하고,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오히려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하며,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기적처럼 나아 생각보다 더 길고 오롯한 삶을 살다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