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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Dec 27. 2022

아프면 괜히 더 서럽다

아프지 말자



독감을 앓기 시작하고 열흘이 지났다. 지랄 맞은 독감 열은 이틀 만에 떨어지고 독감이란 놈은 잡아 족쳤음에도 여전히 체력이 올라오지 않아 피곤하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출산했을 때와 비교는 안 되겠지만 마치 그때와 비슷하게 온몸의 육수가 다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다. 또 하나 비슷한 건 그때처럼 뱃속에 걸신이라도 들어앉은 허기지는 이 느낌은 출산 이후 태어나 두 번째다.


어릴 때부터 소식하고 입맛도 없는 편이라 배고픈 느낌도 잘 모르고 살다가 출산 후 산후 우울증과 함께 온 허기짐의 느낌은 당시 정신 적으로 나를 미치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몇 년 만이지? 두 번째 산후 우울증을 벗어나고 오랜만에 그때의 감각들이 떠오른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 듯 내가 먹는 음식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혀 쌓이지 않는 느낌이다. 독감 후 현재 체력이 많이 축나서 출산 후처럼 내 몸이 절로 영양을 원한다는 걸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평소 쌓아 놓은 게 없는 탓이겠거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은 눈앞에 차고 넘치고, 겨우 열흘쯤 내 손이 닿지 못했다고 엉망이 된 집 꼬락서니는 나를 살살 약 올리며 드러운 성질머리를 건드린다. 본업상의 거래약속은 미루기 일쑤고, 현재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수량을 많이 빼지 못해 전전긍긍이며 좋아하는 글마저 마음껏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 아깝고 속상하다. 그럼에도 지금 제일 일 순위가 체력을 올리는 것이란 것을 알기에.. 아니 사실 내 욕심을 이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모든 걸 미루고 최소한으로 가족을 보조하는 것 외에 먹고 자고 쉬며 자제하고 있다.





며칠 전


엄마께서 밥이라도 해주러 갈까라고 하실 땐 열이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혹여 엄마가 독감이라도 옮을까 거절했었다.


그리곤 이틀 뒤쯤.

정말 엄마의 손이, 품이 그리운 날이었다.



"엄마 눈 다 녹았어? 진짜 와 줄래?"



그러나 아빠가 은근 반대하셔서 엄마는 결국 오지 못하셨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엄말 염려하여 반대하신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늘



"엄마 뭐 해?"

"응~ 아빠가 소머리국이 먹고 싶다 해서 네 동생이 돈 붙이고 아빠가 고아서 간다고~  지금 동생네 가려고 나서는 길이야."


엄마는 뭘 몰래 먹다 들킨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말하셨다...




오늘 역시 오전에 일을 좀 깔짝이니 몰려오는 피로가 겁이 나 스스로 두 손 두 발 들고 침대로 대피했다.

낮잠에서 깨보니 엄마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엄마 왜~ 전화했어?"

"아니.. 아침에 전활 받는 둥 마는 둥 끊어서. 지금 집에 다 와가는 중이야."

"왜? 아프다는 딸내미 집엔 오지도 못하게 하고 멀쩡한 아들집에 국 고아서 가는 게 찔리는 거야?"

"안 그래도. 네 동생한테 얘기했더니 누나 서운하겠다고 필요 없는 말 했다고 한 소리 들었네."

"알겠어~ 조심히 들어가.. 나 약국가 장도 봐야 하고 엄마."

"아직도 아파?"

"이제 열흘 됐으니 아직 아프네 애들도 다시 기침하고. 잘 들어가."




결국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을 꼬집고 말았다. 정말이지 못났다. 못났어.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부모 형제에게도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하는 내가 이번엔 정말 아픈가 보다. 여적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떨어져 웬만해선 혼자 잘 해내다가 괜히 엄마 손을 빌리려 한 것 보면.








요즘 들어 멀어진 언니들을 생각하면 회의감이 밀려온다.

가족이 다 뭐길래.

어릴 때부터 나는 양보만 하고 산 것일까.

하지만 괜찮다.

 털고 일어서

금세 사라질 잡념들이다.




정말이 아프니까 참 치사하고 서러워지는 날이다.

그러니까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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