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을 앓기 시작하고 열흘이 지났다. 지랄 맞은 독감 열은 이틀 만에 떨어지고 독감이란 놈은 잡아 족쳤음에도 여전히 체력이 올라오지 않아 피곤하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출산했을 때와 비교는 안 되겠지만 마치 그때와 비슷하게 온몸의 육수가 다 빠지고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다. 또 하나 비슷한 건 그때처럼 뱃속에 걸신이라도들어앉은듯 허기지는 이 느낌은 출산 이후 태어나 두 번째다.
어릴 때부터 소식하고 입맛도 없는 편이라 배고픈 느낌도 잘 모르고 살다가 출산 후 산후 우울증과 함께 온 허기짐의느낌은 당시 정신 적으로 나를 미치게 만드는큰 이유 중 하나였다.
몇 년 만이지? 두 번째 산후 우울증을 벗어나고 오랜만에 그때의 감각들이 떠오른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 듯 내가 먹는 음식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혀 쌓이지 않는 느낌이다. 독감 후 현재 체력이 많이 축나서 출산 후처럼 내 몸이 저절로 영양을 원한다는 걸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평소 쌓아 놓은 게 없는 내 탓이겠거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은 눈앞에 차고 넘치고, 겨우 열흘쯤 내 손이 닿지 못했다고 엉망이 된 집 꼬락서니는나를 살살 약 올리며드러운 성질머리를 건드린다. 본업상의 거래도 약속은미루기 일쑤고, 현재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수량을 많이 빼지 못해 전전긍긍이며좋아하는 글마저 마음껏 쓰지 못하고있는 것이 너무 아깝고 속상하다. 그럼에도 지금 제일 일 순위가 체력을 올리는 것이란 것을 잘 알기에.. 아니 사실 내 욕심을 이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모든 걸 미루고 최소한으로 가족을 보조하는 것 외에 먹고 자고 쉬며 자제하고 있다.
며칠 전
엄마께서 밥이라도 해주러 갈까라고 하실 땐 열이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혹여 엄마가 독감이라도 옮을까 거절했었다.
그리곤 이틀 뒤쯤.
정말 엄마의 손이, 품이 그리운 날이었다.
"엄마 눈 다 녹았어? 진짜 와 줄래?"
그러나 아빠가 은근 반대하셔서 엄마는 결국 오지 못하셨다. 기관지가 좋지않은 엄말 염려하여 반대하신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늘
"엄마 뭐 해?"
"응~ 아빠가 소머리국이 먹고 싶다 해서 네 동생이 돈 붙이고 아빠가 고아서 간다고~ 지금 동생네 가려고 나서는 길이야."
엄마는 꼭 뭘 몰래 먹다 들킨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말하셨다...
오늘역시 오전에 일을 좀 깔짝이니 몰려오는 피로가 겁이 나 스스로 두 손 두 발 들고 침대로대피했다.
낮잠에서 깨보니 엄마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엄마 왜~ 전화했어?"
"아니.. 아침에 전활 받는 둥 마는 둥 끊어서. 지금 집에 다 와가는 중이야."
"왜? 아프다는 딸내미 집엔 오지도 못하게 하고 멀쩡한 아들집에 국 고아서 가는 게 찔리는 거야?"
"안 그래도. 네 동생한테 얘기했더니 누나 서운하겠다고 필요 없는 말 했다고 한 소리 들었네."
"알겠어~ 조심히 들어가.. 나 약국가 장도 봐야 하고 엄마."
"아직도 아파?"
"이제 열흘 됐으니 아직 아프네 애들도 다시 기침하고. 잘 들어가."
결국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을 꼬집고 말았다.정말이지 못났다. 못났어.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부모 형제에게도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하는 내가 이번엔 정말 아픈가 보다. 여적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떨어져 웬만해선혼자 잘 해내다가 괜히 엄마 손을 빌리려 한 것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