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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Jan 04. 2024

나의 거울, 나의 조각들

나를 찾아가는 여행


부모의 거울


한동안의 고요함, 한동안의 적막을 깨고 또 한 번 역대급 태풍이 집안 곳곳을 훑고 간 후였다.


"지가 아무리 서운하다고 해도 그래 전화도 거부하고 이렇게 까지 한다는 말이지?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이지! 나도 앞으로 아들 볼 일은 없다."


한동안 스스로도 부모님과의 연락을 피해 몸을 숨겨 본 나로선 동생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했다. 그러나 아버지 마음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부지, 부모도 자식한테 서운하고 실망하면 이렇게 다시는 안 본다고 하는데, 아직 자식 한 번 낳아 보지 못한 자식이 부모님께 실망해서 연락 안 받는 건 그렇게 서운할 일이 아니에요. 내 보기엔 동생이 아버지랑 젤 닮았어요. 성격이 똑같아서 극단적인 거예요. 그렇지만 마음 약한 거, 우직한 거, 효자인 거 다 닮았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믿고 기다리시면 연락 올 거예요. 지금은 아파서 그런 거예요. 잘 아시잖아요. 아버지도 엄마도 우리 가족 모두 조금의 거리를 두고 자신 마음을 돌볼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에요."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성격적인 부분을 많이 물려받았다. 휘어지느니 부러지고, 흙과 백이 확실하다. 반면 마음이 약하고 주변인들의 일을 내 일처럼 헌신하는 면이 있다. 본인과 똑같이 서운해서 연락을 잠시 끊은 아들을 보고 그것이 서운해서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극단적으로 내뱉는 것을 보고 그런 아버지가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그 모습에서, 아버지의 불안하고 거친 말속 어딘가에서 나의 조각을 발견하곤 죄 없는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나의 거울


나를 채찍질하는 이유. 아버지의 말에 숨이 막히고 화가 나면서도 내가 쏜 화살이 향할 과녁엔 아버지뿐 아니라 나의 심장도 겹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무엇보다 투명하고 깊은 거울 두 개가 내 주위를 매일 맴돌며 나를 정확히 투영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유독 가장 숨기고 싶은 검은 형태를 거울에게 들통이 날 때면 괜히 자신의 임무를 잘 해내고 있는 거울들만 더 나무라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모를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자식에게 강요할 게 아니라, 자식이 되었으면 하는 모습으로 내가 바뀌려고, 되려고 노력해야 한 다는 걸, 그래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지금 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걸.


는 내 거울인 두 아이들에게서 흩어진 조각들을 가장 많이 발견하곤 한다.





어쩌면 우린 모두의 거울


어떤 강사의 강의를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뇌리에 깊이 박힌 문장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내용은 참이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비난하며 싫어하는 모습, 실은 그 모습은 자신에게 있는 스스로 가장 싫어하며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의를 듣던 당시 자주 의견 대립으로 서로를 비난하던 한 상대가 있었다. 그 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강력히 그 상대가 떠올랐다. '절대 그럴 리 없지, 그의 모습이 내게 있다고?' 라며 믿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내게서 고쳐야 할 모순이 당시 그 사람이란 거울에 투영되었기 때문에 상대가 더 틀려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당시엔 내 말이 옳다고 내가 나쁜 게 아니라 나는 정당했다고, 나는 그저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상대도 그저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당시 상대를 아프게 했을지 모를 언행이, 지금에 와선 옹졸했던 그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허나 당시 나의 옹졸함, 내가 잠시 거부했던 상대에게서 한 수 배웠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조각들을 찾는 여행


인생은 탄생의 순간 얻은 유일한 하나의 육체에 꼭 맞는 알맹이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그 길의 문을 발견고 겨우 한 발짝 내딛으려는 내가 앞으로 나의 알맹이, 수많은 조각들을 찾는 길 곳곳엔 언제나 여러 형태의 거울들이 존재하며 조금은 서글프고 힘든 길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 거울은, 때론 부모가, 때론 자식이, 때론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때론 가난한 자, 때론 갓난아이, 때론 옹졸함, 때론 어리석은 자, 때론 구름, 때론 어떤 물체, 때론 좋은 책이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고요히 신중하게 귀 기울여야만 닿을 수 있는 저 깊고 깊은 어딘가 존재하는 안내자의 말에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모든 것의 시작일 것이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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