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의 '시'자 마저 좋다.
토요일. 바로 어제,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시댁을 다녀오게 됐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시댁을 들리려고 노력하는 나는 보기 드물게(?) '시금치'의 '시'자 마저 좋아하는 1인이기도 하다.
두 시간을 꼬박 달려 마침내 멀고도 가까운 시댁에 도착했다. 할머니 집엘 가면 어김없이 놀이터 부터 가자고 조르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짐을 풀자마자 우리는 집 근처 놀이터로 향해야 했다.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오르 내리길 반복하며 신나게 뛰어놀다가 이내 시소를 타자고 졸라댔다. 올해 겨우 다섯 살이 된 둘째 아이 때문에 아이들끼리 시소를 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매번 어머니와 나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앞자리에 앉히고 마주 앉아 시소를 타곤 한다.
"아이고 야야.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애들은 그래 얼마나 신이 나겠냐?"
"맞아요 어머니.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보다 더 신난 것 같기도 한데요? 누가 우릴 고부사이라고 보겠어요. 시소 같이 타는 고부사이가 또 있겠어요? 하하하하하 "
나는 어른다운 어른인 내 어머니(시어머니)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팍팍한 현생의 삶에 치여 마음이 허름해지고 게을러지다가도 어머니를 한 번 뵙고 오면 긍정적인 에너지와 삶의 지혜를 얻어 흐트러진 내 삶의 자세를 다시금 다잡게 되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가끔은 어머니가 내 진짜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세 쫓아온 미안함이 친정엄마의 얼굴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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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박 2일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뜨니 벌써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조금만 싸주시기로 했지만 결국엔 또 이빠이(?)가 된 먹거리 박스를 차에 싣고 모두 안전벨트를 두르고 의자에 앉았다.
늘 자식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얼굴에선 여러 감정들이 비친다. 고마움, 사랑스러움, 애틋함, 아쉬움. 그런 어머니의 얼굴에선 친정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일 때가 많다. 친정 아빠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친정엔 들리지도 못하고 집으로 오는 차 안, 나는 더욱 아빠,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한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 오늘도 마찬 가지다. 아쉬운 마음에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자 기억하기 싫은 몇 주전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굳이 그날의 심정을 기록한 글을 뒤져 그날을 다시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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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6 - 엄마가 또 가출 했다. 세찬 비가 오던 밤.
한- 비를 쫓아 떠난 여인
-생각이 걷는 길-
추적추적 서글픈 밤
비를 쫓아가셨나요.
빗속에 홀로 선 쓸쓸한 여인.
내리는 비보다
더 흘린 눈물이 닦아줄까요.
피하지 않고
다 맞은 비가 씻겨 줄까요.
어디엘 가서 무슨 짓을 해야
그 많은 '한'을 다독일까요.
아무리 헤매 봐도
찾지 못해요.
차디찬 침묵으로 내치는
야속한 비를 박차고
돌아와요.
당신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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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은 날. 세찬 비가 내렸다.
몇 번째 인지 조차 기억할 수 없는 엄마의 가출.
감감무소식이던 그녀는 삼일 뒤 별일 없이 집으로 귀가했다.
돌아가며 코로나를 앓고 있는 친정부모님을 뵙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먹먹한 마음에 문뜩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난히 날씨가 좋아 모든 게 다 좋던 오늘.
또다시 가출을 감행했던 그날 밤처럼.
엄마는 내게 세찬 비를 내렸다.
나는 얼마나 더 이 고통을 반복해야 죗값을 다 치를 수 있게 될까.
돌아오는 길, 창을 침범해 볼에 닿는 햇살이 너무 예뻐서 나는 한참동안 가슴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