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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20. 2022

#6.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팀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리더들의 군상을 통해 '타산지석'의 사료를 써봅니다

그건 단어를 한 칸 들여 쓰기 하고, 표현을 영어로 바꿔보자


 우리 팀장은 디테일하다.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디테일하다. '디테일이 곧 경영이다'라고 칭하는 이도 있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디테일하게 의사결정을 못 내리는 걸 보면 그는 경영 쪽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언제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아 결과물을 만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는 그제야 디테일부터 수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디테일부터 시작돼 전체가 뒤바뀐 보고서는 어김없이 경영진에게 까여 되돌아온다. 




 그가 일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본인이 아는 분야인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가에 따라 일하는 방식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타입 1) 아는 분야일 경우, A~Z까지 모든 과정에 대해 일일이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한다. 자료는 어디에서 찾고, 유관부문 어디랑 협조해서 추가 내용을 보완하고, 전체적인 맥락은 이런 형태로 잡고, 세부적인 메시지의 구성들은 이러이러한 것들로 채우라는 식이다. 


 심지어 본인 아이디어를 지나가는 말로 대충 불러주며, 받아 적어 두었다가 그대로 활용하라고 한다. 팀원들이 새로운 방향성이나, 기존과는 다른 아이디어를 낼 경우, 철저하게 보고서 상에서 걷어내 진다.  


 결국 새로운 방향성, 기존과는 다른 아이디어를 제기해봐야 꼰꼰하게 팀장이 다 걷어낼 것을 알기에 아무도 그런 수고를 더이상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재작년 보고서, 작년 보고서, 올해 보고서는 비슷한 맥락에서 비슷한 내용들로 연도만 다르게 나열될 뿐이다. 그리고 팀원들의 커리어 또한 비슷한 수준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일단 아이디어를 생각해보자. 나도 생각해볼게.

 이건 타입 2)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일 경우다. 팀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고 그냥 망망대해에 던져둔다. 각자가 고군분투하며 수집해 온 아이디어를 그는 결과물이 갖춰진 이후부터 디테일하게 평론할 뿐이다. 맞춤법, 한/영 변환, 중간중간 쓸데없는 한자 표현 추가까지 지시하며 수정하다 보면 기가 막히게 예전 보고서와 비슷한 맥락으로 되돌아온다. 새로운 분야의 큰 맥락은 이해를 못 하니 그저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 안에서 표현에 변주를 주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게 예전과 비슷하게 수정된 보고서들은 슬프게도 경영진의 의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불편해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경우가 많다. 생각 없이 팀원에게 던진 리더의 잘못인지, 그것을 뛰어넘어 경영진의 고민과 고뇌를 담아내지 못한 팀원들의 무능함이 문제인지 그 선후관계는 모르겠으나 팀원들은 그저 지쳐갈 뿐이다.  


머리는 비우고, 그저 받아쓰며, 결과물은 모른다.

 한 후배가 지금 우리 팀이 일하는 방식을 표현한 문구다. '답정남'이거나, '아몰랑'이거나 양극단을 오가는 팀장의 업무 스타일에 팀원들은 어느새 스스로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일하는 게 싫어 몇몇 팀원들은 본인들이 스터디하기 위한 별도의 보고서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팀원들끼리 회람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등 지금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 물 경력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자율과 자발성의 물꼬를 틀어쥐면, 조직은 말라죽어갈 뿐이다.

 그저 디테일하게 시키기만 하는 팀장이 되지 말자. 나의 업무 경험만이 표준이고 정답이라 생각하지 말자. 업무 효율을 핑계로 구성원의 자발성과 성장을 희생하지 말자. 불가피하더라도 A부터 Z까지 매니징이 필요한 상황을 줄여나가는 팀장이 되자.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Managing(관리)'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팀원들 스스로 스터디를 위한 별도의 자료들을 작성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챈 팀장은 요새 염탐 스킬이 늘었다. 화장실이나, 외부를 오갈 때면 언제나 팀원들의 모니터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러다 본인이 처음 보는 자료나 내용들이 보이면 부리나케 무슨 내용인지 묻고는 해당 자료를 보내달라고 한다. 그렇게 팀원들의 혹시 모를 새로운 아이디어나 처음 보는 자료들을 탐한다. 


 팀장의 지속적인 염탐에 빡친 팀원들은 모니터 보안필름을 쓰기 시작했고, 지친 팀원들은 하나둘 스터디용 자료들을 본인들 머리에만 담은 뒤, PC에서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담고, 누군가는 탐했지만, 결국에 남겨진 것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Photo by Pascal Swi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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