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4-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처음 태어난 땅에
거미처럼 눈 많고 팔 많은 사람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하느님 앞에
지상에 없는 이야기를 사러 갔다는 이야기
표범도 말벌도 요정도 두렵지 않던 지혜로운 그를
하늘까지 가게 만든 것은 오직 하나, 이야기 없는 세상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없을 때도 그림을 그렸다
아이는 어른의 그림, 어른은 아이의 그림을
아이도 어른도 아닌 사람은 어쩔 줄 몰라
그리다 만 수채물감 위로 지우개질을 한다
그림 속 사람들은 발이 달려 그림과 함께 화폭 밖으로 달려나가고
그린 사람만 말없이 남아 눈 감는다
씨줄과 날줄이 서로 지나친다
겹겹이 쌓인 붓질 위엔 누가 몸을 누일까
신발 신는 법을 떠올리려다 주저앉은 노래기처럼
한때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들의 윤곽은
잡아보려 할수록 흐릿해진다
이야기는 그림보다 무겁고, 또 그림보다 잽싸다
들어오고 나가는 이야기를 붙잡아두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마음만 남은 날 헌책방 서가에서 그림책을 펼쳐보면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곁에 있지 않을 때
뒤에 두고 온 이야기들이 한세상을 이룬 채
색색의 눈길로 서로 마주 보고 있을 텐데
내가 두고 온 이야기들 가운데 나를 두고 온다면
하늘을 이 땅으로 끌어당겨올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