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48-
I
잊혀질 때쯤이면 되돌아오던 빙하기는 우리 탓이었다 모르는 새 밀려오는 빙산들은 그대로인 채 유빙들이 점점 더 세를 불렸다 이 골목에 사글세로 살던 세입자들은 이제 거의 다 쫓겨났다 도롯가에는 사람보다 큰 비둘기들이 돌아다니며 열린 유리창을 깨어 먹고 살았기 때문에 훨씬 단단한 방호벽을 지어야 했다 얼기설기 엮인 경사진 골목들 사이에 쓰레기봉투들이 쌓여 물 밖에 나온 고기 마냥 가쁘게 헐떡거렸다 유빙이 자꾸 동네로 흘러들어서 새로 들어온 세입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II
어릴 적 냉장고 맞은편 장식장 위 아크릴 상자에 주워온 달팽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던 기억이 난다 윗동네부터 한기가 담벼락을 시끄럽게 두들기며 배어들고 엄마는 겨울잠에 든 달팽이들을 죽은 줄 알고 쓰레기더미와 함께 내다 버렸다 나는 유빙이 다 풀리고 빙산만 남을 때까지 애꿎은 비둘기들한테 화풀이를 했다 지워지지 않는 달팽이 점액질이 장식장 뒤편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기가 풀리고 셋집들 공사가 다 끝나가도 전파가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아마 지금까지 세입자들이 계속해서 집을 두껍게 고쳐 짓다 보니 그런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