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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성가

-소월삼대목 50-

by 김병주

감사합니다, 오늘도 훔치고 착취하고 부수고 해친 만큼 몸과 마음 자라났습니다


정성스레 차린 아침밥도 무시하고 헐레벌떡 뛰쳐 나와

기도 올리던 거지가 며칠 만에 얻은 아침을 대신 낚아채며

저의 흐릿한 동태눈을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택시가 오질 않자 부엌에서 그릇을 닦던 어머니 불러내

허리뼈 드러난 등에 올라타 빨리 가지 못하겠냐 성을 내며

저의 매끈한 손으로 어머니 어깨를 더 꽉 붙들어 매려 애썼습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실상 내가 한 것도 아닌 일의 노고 보상받고자

건너편에 나이 든 상사의 불편한 눈길에 나직이 쌍욕을 내뱉으며

저의 서늘한 가슴에서 거대한 잠을 최대한 가둬두려 애썼습니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여있는 잘나고 못난 사람들 나불대는 꼴도 보기 싫어

입들은 놔두는 대신 그 귀들에 납을 붓고 눈을 찔러 불구 만들며

저의 백태 덮인 혓바닥이 떨어져 나가도록 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늘로 솟은 것들 그림자가 생기기 직전 그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 감당할 수 없어

신호등을 힘껏 걷어차 그 기둥 속 구멍에 살던 벌레들을 내쫓으며

저의 화려한 신발 끈을 더 단단히 묶어놓으려 애썼습니다


불판의 고기 마지막 한 점 집어먹은 마주 앉은 놈에 분노해

술기운 가득 힘입어 냅다 그 상판대기를 눌러 찍고 지져버리며

저의 꽉 쥔 주먹이 누구하고든 맞부딪히도록 하려 애썼습니다


밤늦어 돌아오는 지하철 막차에서 헐떡거리며 주위 둘러보다

자리에 갓 앉아 고단한 잠들려는 만삭 임산부를 끌어다 내치며

저의 둔중한 몸뚱아리가 잿빛 꿈처럼 좌석에 녹아들게 하려 애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더없이 떳떳하게 살아 행복했고, 우러를 하늘 그만큼 낮아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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