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이 싫었던 이유

by jaeik

나는 역 근처에 살고 있다.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캐리어나 짐을 끌고 우리 아파트 근처를 분주히 오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내려다본다.

설렘 가득한 얼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기차역을 보면 이상하게 여행의 즐거움, 설렘보단 어릴 때 새마을호, KTX를 타고 새벽 기차를 타고 찾아가던 서울 병원이 생각난다.

나에게 서울은 병원 그 자체였다.

다른 이들처럼 서울에 유명 명소를 간다거나 여행의 목적이 아닌, 나에게 기차는 병원을 가기 위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릴 땐 좀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었다.

남들 다 가보는 기차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게는 '기차'가 설렘과 두근거림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병원의 기억으로만 가득 찼으니까.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기차 안에서 조는 것도, 서울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도 모든 게 무겁고 피곤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커다란 백팩을 메고, 모르는 남자에게 매번 기차 탑승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난처하고 진땀 나는 일이었을지.

새벽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틱틱거리는 아들을 다독이며 서울을 방문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때는 몰랐다. 엄마도 여행 가고 싶었을 텐데, 엄마도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을 텐데, 오직 나를 위해서만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기차'와 '서울'이라는 의미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휴가철을 맞이해 여행을 가기 위해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기차를 타도 나도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기차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무겁고 가기 싫었던 기차역의 기억이 이젠 아들, 딸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기억으로 덮였으면 좋겠다.

그 무거웠던 발걸음들이 이제는 가벼운 여행의 추억으로 바뀔 수 있기를.
창밖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처럼, 우리 가족도 함께 추억을 쌓는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잠시 멈춤이 중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