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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묘

by 정유지

의친왕 묘

의친왕- 30).JPG 출처: 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망국의 태자라도 친일을 하지 않고

해외서 독립운동 펼쳤던 왕족일세

사자가 포효하듯이

대한제국 지킨 왕


-정유지



의친왕 30).JPG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의친왕(이강, 1877~1955)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내에 위치해 있다.


의친왕의 묘는 혼유석 받치고 있는 고석엔 다른 왕릉과 달리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왕족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 했던 의친왕의 기상이 짐작된다.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귀인 장씨이다. 본관은 전주, 휘는 강(堈), 초명은 평길(平吉), 호는 만오(晩悟)이다.


1891년 의화군에 봉해졌으며 1894년에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6개국 특파대사로 영국, 프랑스, 도이칠란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1899년 미국 유학하였고 그 해 의친왕에 봉해졌다. 1905년 귀국하여 육군 부장, 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비타협하고 독립 운동가들과 가까이하며, 1919년 대동단의 최익환 등과 연락, 상해 임시정부로 탈출하기 위해 상복 차림으로 변복하고 만주 안동현까지 갔으나, 일본군에 발각되어 강제 송환되었다.


1919년11월 상해 망명을 도모하면서 임시정부에 밀서를 보낸 내용이 ‘독립신문’ 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후 여러 차례 일본으로부터 건너올 것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고, 일본을 배척하는 정신을 지켰다. 이후 일제로부터 형식적인 공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임종 직전 천주교에 귀의하였으며, 세례명은 비오이다.




끝까지 대한제국의 태자로서 의친왕으로서 기백 잃지 않고 독립운동 펼쳤던 왕족으로 기억된다.

의친왕- 3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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