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창

식초

by 정유지

식초 퍼포먼스

가까이 다가섰다 도망치고 말 것을

함부로 맛봤다가 경칠 수도 있지만

한 방울 결정체 속에

영혼을 간직한 너

불덩이, 숯덩이로 타들어 간 상사병

식히고 또 식혀서 비워내는 사랑아

눈물을 떨어뜨렸나

향긋함 꽃 핀 자리

-정유지



오늘의 창은 ‘식초’입니다.


식초는 액체 조미료입니다. 신맛의 대명사이지요. 식초는 체내에 생긴 산을 알맞게 중화시켜 혈액과 체액의 수소이온 안정을 유지하고, 야채의 비타민 C를 보호합니다.


암의 면역력을 높이고, 성인병, 동맥경화를 예방합니다. 유산을 분해, 피로를 없애고, 잉여 영양소를 분해합니다.


'식초 같은 사랑'이란 통렬하게 스미는 정수(精髓)의 맛이라 할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섰다 도망치고 말 것을’이라는 시구는 마치 식초를 들이켰을 때 본능적으로 몸이 움찔하며 물러서는 반응처럼, 사랑 앞에서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닮았습니다. 식초는 함부로 맛보면 강렬하게 경고하지만, 정제된 한 방울은 요리의 맛을 살리듯 사랑도 깊이 우려낸 끝에야 비로소 향을 피웁니다.


‘불덩이, 숯덩이로 타들어 간 상사병’은 식초가 발효를 거쳐 신맛으로 완성되듯, 고통과 열병 속에서 숙성되는 감정을 나타냅니다. 눈물조차 향이 되는 자리, 이는 식초가 단지 자극적인 맛이 아니라, 눈물 같은 삶의 경험을 농축한 결정체임을 상징합니다.


결국, 인용된 작품에 나오는 시의 사랑은 발효된 신맛입니다. 날것이 아닌, 상처와 기다림, 절제를 지나 비로소 남은 깊고 정제된 감정의 농축액.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향기롭습니다.


신맛이기에 더 깊은, 발효된 사랑의 시(詩)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음식의 최종 단계서 톡 떨군 향긋한 식초 한 방울처럼 행복의 맛이 돋는 사랑의 하루 보내는 경남정보대학교 디지털문예창작과의 액티브 시니어를 응원합니다.


"음식의 완성품을 만드는 결정체 식초, 행복이 맛을 돋게 만드는 신의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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