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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창

빈배철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싸움을 회피한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은 처세의 기본이다. 비울수록 가능하다.

by 정유지

사공이 있지 않고 무작정 흘러간다

노 하나 젓지 않고 농무濃霧 위 떠다니다

마침내 충돌한 나룻배

다툼 없이 지나친다

- 정유지의 시, 「나는 빈배다」 전문


오늘의 화두는 '빈배(虛舟)철학'입니다. 안개의 강이 펼쳐지는 아침입니다. '빈배철학'은 싸움을 회피하는 최고의 처세술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결국 오랫동안 마찰을 방지하는 비결로 작용합니다. 마찰의 주인공인 사람의 부재로 인해 갈등의 요인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찰의 가장 큰 대상이 빠져있기에 무소유의 가치마저 동반합니다.


"한 사람이 배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배가 그의 배와 부딪히면 아무리 성질 급한 사람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배이므로. 그러나 부딪히기 직전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못 들으면 다시 소리친다. 마침내 욕을 퍼붓는다. 이유는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배가 비어 있다면 소리쳐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질 않는다. 아무도 그대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은 장자 「빈배」입니다.


장자의 ‘빈배철학’을 크게 3가지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혈육과 같은 끈끈한 관계속에서 빈배철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남의 집의 유리창을 깨서 부모가 돈을 물어주었다고 해서 자식에게 돈 받을 부모는 없겠지요. “내 자식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라고 웃어넘기겠지요.


둘째는 상대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도록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이 말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배려, 상대 중심의 관계가 성립될 때 가능한 논리입니다. 내 중심의 사고와 행동은 상대에게 마음의 큰 상처를 입힐 수 있으며, 결국에는 그것이 부메랑 되어 올 수 있습니다. 상대를 관심있게 바라보며 상대의 마음 문 열리길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 스스로 먼저 조급하고 성급한 마음을 비워내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상황부터 극복해야 좋은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


셋째는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접근하는 이해관계입니다. 가령 1차선 주행 중, 2차선에 차량이 없는 줄 알고 갑작스럽게 2차선으로 바꾸다가 자칫 충돌 직전까지 간 일이 있었지요. “빵”하는 상대 차량의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라 차선을 원래의 1차선으로 뒤돌린 적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신호에 걸려 대기하는 순간, 클랙슨 소리를 냈던 2차선 주행 차량 운전자가 갑자기 나타나 화가 난 표정으로 “야! 내려!”라고 소릴 쳤지요. 큰 싸움이 일어날 상황이었습니다. 차의 창문을 조금 내린 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졸다가 실수를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싸울 기세였던 상대 차량의 운전자가 허무한 듯이 되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졸음운전은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졸음운전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에서 운전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100% 졸음운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과 공감할 수 있는 졸음운전의 논리 덕분에 큰 싸움을 면할 수 있었지요.


끈끈한 관계, 친밀한 관계, 납득의 관계로 연결고리를 맺는다면 싸움과 갈등을 회피하는 결과를 만들 것입니다. 장자의 '빈배철학'을 관계의 관점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봤습니다.


내 이웃을 차분히 돌아보며 헝클어지고 꼬인 실타래가 있는지 살피는 하루, 장자의 '빈배'처럼 누군가를 배려하는 하루의 배를 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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