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의 창

금정산은 인생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약수를 선물한다.

노치영 시인은 <금정산 약수터>에서 노자의 '멈춤의 미학'을 소환한다.

by 정유지

바다를 가로질러 짙푸른 섬이 뜬다

바람이 머물다가 선경仙境을 남긴 자리

여백을 물들인 농무濃霧

햇살마저 삼킨다


너울성 파도 타고 어록을 남긴 걸까

앞서 간 풍경소리 깃을 친 山의 말門

찰그랑 지지불욕知足不辱을

노을 속에 지핀다

- 정유지의 시, 「금정산金井山」전문


오늘의 화두는 '금정산金井山'입니다. 금정산을 일컬어 부산의 '진산’이라 부르는데 진산鎭山이란 나라의 도읍이나 고을의 뒤쪽에 있는 큰 산을 일컫는 뜻으로 곧 부산을 상징하는 산을 말합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부산 금정산(801m)은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화강암 풍화로 인한 기암절벽이 많아 천혜의 절경입니다.

금정산을 시적 소재로 삼은 노치영 시인의 시조, 「금정산 약수터에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위틈 약수 길러 물병 네 개 배낭 메고

삼사 킬로 산길 따라 허정허정 시소 타며

팔다리 어깻죽지가 뻐근한 듯 보챈다


어느덧 강물 따라 흘러간 많은 성상星霜

마음은 여전한데 몸이 불평 딴청이다

무심한 구름 보면서 애꿎은 게 세월타령


한창때와 달라진건 의기소침意氣銷沈 기력저하

오기傲氣 자만自慢 내려놓고 현 시제 바로 알아

노자의 짤막한 경구 지지불태知止不殆 새겨본다

- 노치영의 시조, 「금정산 약수터에서」 전문


인용된 내용은 노치영 시조집 『금정산을 벗 삼아』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노치영 시인은 금정산 약수터에서 인생의 깊은 맛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노시인은 정상 밑의 쉼터인 약수터에서 노자의 철학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금정산의 고당봉姑堂峰 밑에 있는 용왕샘은 보통 고당샘이라고도 불립니다. 고당샘의 좌측과 우측에는 유명한 미륵샘과 금샘이 있습니다. 미륵사의 미륵샘은 거대한 암반을 뚫고 솟아나는 영험한 약수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노치영 시인은 금정산을 지키는 현대판 산신령 같은 존재입니다. 시조라는 시문을 가지고 금정산을 재조명하고 금정산의 소중한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존재입니다.


금정산 약수터는 일상에 지친 이들을 불러 모으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인간의 존재적 자각을 추구하며 자기반성과 성찰을 발현시키고 있습니다. 오기와 자만이란 단어를 스스로 상기시키면서, 겸허와 겸손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치영 시인은 노자의 어록을 꺼내 삶을 성찰하고 있습니다.


인용된 작품 중에 등장하는 지지불태知止不殆는 노자 <<도덕경>> 제44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 가이장구可以長久”라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멈출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노자의 가르침은 실용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만족(足)함을 알고 멈춤의 미학을 아는(知) 삶이 내 몸(명예, 사회적 위치)을 살리고, 내 영혼을 행복하게 만드는 최고의 처세술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주체는 성공한 경영인이거나 권력 계층입니다. 이미 성공이라는 정상에 다가선 이들에게 전하는 경종의 울림입니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욕망을 보일 때 벌어지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부富가 축적될수록 나눔의 실천을 통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금언이 되 있습니다. 오직 이익 창출에만 혈안이 되어 수익에의존하는 기존의 경영마인드를 진일보시켜 제대로 베풀 줄 모르면 결국 인간의 존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의미도 숨겨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을 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음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자가 말하는 '멈춤의 미학' 속에는 변화와 변신, 나눔의 실천을 전제로 한 대변혁도 숨겨져 있습니다. 기존의 스타일을 추구하며, 정확한 데이터 분석에 의한 새로운 변화보다 무리하게 문어발식 확장을 하다가 낭패를 볼 수 있음도 시사하고 있습니다. '멈춤의 미학' 속에는 정상에 선 자의 계속적인 생존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철학적 준거점이 샛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한편, 금정산의 '금정金井'은 우리말로 '황금의 빛이 나는 샘(금샘)'입니다. 예부터 금정산의 고당봉 금샘에 가서 부부가 함께 손을 담그면 금슬이 금세 좋아진다는 부부금슬 명당이 바로 그곳 금샘입니다. 다정다감한 부부 사이를 악기樂器로 비유할 때, '금슬琴瑟이 좋다'라고 표현합니다. '금슬'이란 '거문고(琴)와 비파(瑟)'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두 현악기의 합주合奏 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금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일정한 샘물의 양을 유지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금샘은 바위 둘레가 7m로 샘의 둘레가 3m이고 깊이가 20cm 크기의 하트 모양으로 금샘 물은 샘솟는 것이 아니라, 빗물이 고여 자연스럽게 샘을 이룹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3권 동래현 산천조에 의하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里에 있다. 금정산 산마루에 3장 정도 높이의 돌이 있고 그 돌 위에 샘이 있는데, 샘의 둘레는 10자(尺)이며, 깊이가 7치(寸)정도 된다. 샘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데 샘물의 물빛은 황금색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금정산이란 명칭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금정산의 범어사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色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물 속에서 놀았다.”라는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는데, 그런 연유로 인하여 금정산에 절을 짓고 '범어사梵魚寺'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범어사의 '범어梵魚''하늘에서 내려와 금샘(金泉)에서 살던 물고기'를 지칭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부산 금정산을 찾아 약수터의 시원한 물맛을 경험하며, 금정산 산신령 노치영 시인의 금정산 관련 시조작품들을 낭독하는 풍류도 즐겨보려 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인상은 오래간다. 심지어는 3개월까지 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