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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Aug 24. 2022

1. 글 쓰려고 퇴사한다니

서른 다섯. 빼도 박도 못 하게 30대 중반이 됐다.

직원 열 명도 안 되는 소기업에서 맞이하게 될 얼마 남지 않은 나의 30대가 선명히 그려졌다. 결혼은 커녕 연애도 제대로 못 하고 그저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병든 닭의 동공으로 버틴지 5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3년 야자시간 내내 에쿠니가오리와 요시모토바나나의 책들을 섭렵하며 막연하게 작가라는 직업을 꿈꿨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 쓰며 먹고 사는 삶은 나에게 그저 봉황처럼 존재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변함이 없었지만 정작 곁다리에만 시간을 허비했다. 

신간이 나온 작가들의 북토크에 참여해 글쓰기 비법이나 영감의 원천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만 하며 세월을 다 보냈다. 퇴근 후 네이버 인기기사 베스트 댓글에 공감 +1을 보태는 것만이 내 생각을 표현하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달 전 이루지 못 한 목표를 조금 다른 듯 비슷하게 또다시 세웠다. 가끔 성공 한 적도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날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실패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10대 시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이후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한 채 몸만 늙은 30대 어른이 되어있었다. 꿈이라도 꾸지 말던가.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한 인생이 행복할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직원의 자리에 들렀다가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메신저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5분 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바른 이미지로 업무에 충실하는 모습만 보여주던 후배가 실은 뒤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거친 단어들로 한참 선배인 나를 신랄하게 까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면서 화도 나고 당장 가서 머리채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평소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면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꾹 참고 견뎌온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구린 집단에 있으니 구린 인간과 엮여서 참 별 꼴 다 보는구나.' 그동안 쌓인 퇴직금을 계산해보며 지금이야말로 정말 글 쓰는 인생을 살아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에는 사정이 생겨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며 퇴사 소식을 전했다.


'사장님 사실은 저 글 쓰려고 퇴사한답니다.'



글 쓰려고 퇴사라니. 

확실히 대한민국에 사는 서른 다섯살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처럼 특정 나이에 맞춰 취업, 결혼, 출산을 수행하는 암묵적 룰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모님께는 회사에 나를 미치게 하는 사람이 생겨 스트레스 때문에 도저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조금만 쉬다 다시 일 할 테니 걱정 말라했지만 돌아오는 피드백은 예상과 같았다. 

"니 나이를 생각해야지,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책없이 나와서 어떡하려고, 회사 안 다니고 있으면 누구 소개받기도 어려울텐데.."






엄마 아빠 미안해요. 나 철 들려면 멀었나 봐. 항상 후회하고 미련 많은 성격이 어디 안 가네. 그래도 아직은 30대니까 더 늙기전에 그렇게 꿈꾸던 글쓰는 거 좀 제대로 해보려고 해. 그동안 살면서 뭔가에 올인해 본 적 한번도 없잖아. 맨날 가성비 따지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 궁리만 하고. 진짜 하고싶은 일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사는 사람들 부러워만 했지 그런 사람들이 하는 노력 발끝에도 따라가 본 적 없거든. 


이렇게 나이 먹어가는 내가 점점 싫어지더라. 아직 살아갈 날은 반 이상 남았는데 계속 내 자신이 마음에 안드는 상태로 살아갈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더라고.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지금 내 발목에 묶인 월급이라는 족쇄를 한 번 풀어보려고 해. 


노력을 안 해봐서 그렇지 막상 하면 그 동안 깊이 숨겨져 있던 재능들이 깨어날지도 몰라. 아니 뭐 재능이 없다 한들 내가 이정도로 노력해 봤는데도 안됐다라는 사실을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거야. 왜냐면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평생 품어 온 숙원을 풀게 되었을테니까. 낼모레 마흔인데 막연하게 글쓰겠다는 말이 얼마나 대책없이 들릴지 나도 모르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마.



멈춰지지 않는 문자를 길게 써내려가다 모두 지웠다. 이런 문자 몇 글자로 부모님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용이 결국 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이었다. 막연하고 불안하지만 미래는 결국 나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젠 정말 모든 것이 갖춰졌다. 당분간은 돈 걱정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줄 퇴직금이 있고 무엇보다 시간이 있다. 간절히 원하던 시간과 에너지가 보장되었으니 이젠 정말 매일 그저 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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