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자리

by 여설

가파른 절벽과 하늘 위로 쏟아 오른 검은 돌산의 정상은

기나긴 밤을 지나 뜨거운 태양빛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얗게 깎아 내려진 절벽은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거인이 가득 움켜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왔다.


검은 돌산의 정상아래로 하얀 물줄기 같은 것이 흘러내린 모습이 보인다.

거인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 새겨진 것이 아닐까.


그 아래론 가파른 절벽을 올라갈 준비를 하는 염소들의 모습도 비춘다.


태양빛은 산 전체를 밝히고 있지만 이끼들이 가득 자란 깊은 골짜기 안은

검은 그늘이 자리 잡아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차가운 서리의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 안은 돌산의 또 다른 세상을 품어내고 있었다.


절벽아래로 떨어진 돌들의 무덤이었고

번개가 치던 어느 날 폭우에 의해 떠내려간 이름 모를 들꽃의 터전이 되어있기도 했다.


골짜기를 건너가면 그 끝엔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다리가 흔들거리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돌산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초록의 풀들이 돌산 아래에 덮여 있었다.

들꽃들의 모습도 보이고 바람에 깎여 조각난 돌멩이들도 한데 모여 그늘아래로 섞여 들어가 있었다.


밤이 지나가는 것을 알리듯 거인이 움켜쥔 절벽 사이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그것은 세상의 경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뜨거운 빛에 바람도 따뜻한 듯 불어갔지만 산을 지나 달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바람은 분명히 차가웠다.

그러나 밤은 달을 따라갔고 태양에게 자리를 내어 하늘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돌산의 정상을 넘어갈 때쯤 저먼 경계의 끝에서 돌아온 아침이

바람대신 노을의 모습을 가진 하늘 위로 새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


바람을 가르는 새의 비행은 자유로웠고

작은 몸에서 터져 나온 새의 목소리는 돌산에 이는 바람의 소리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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