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자리만 지킨 2주

by kito

출근 후 자리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엑셀 파일을 열어 하던 일을 이어간다.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주.

계획대로라면 지난주까지 데이터를 정리하고

이번 주에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화면 속 변화는 고작 한 페이지 남짓.

그 사실에 자신감이 툭 떨어진다.


이번에는 결과를 보여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난 또 2주 동안 자리만 지킨 사람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빼고 모두 능력자 같다.

그들에게 나는 그냥 자리에만 앉아있는

회사만 오래 다닌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


예고 없이 열린 회의.

미완성의 보고서를 가지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상사의 질책에 마음이 무겁고 동료들과의 비교에 또 휘청인다.


회의 분위기가 나 때문에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또다시 상처가 가슴에 박힌다.


연차가 쌓이면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신입 때보다 더 쉽게 휘청인다.


매일 출근길 감정을 숨기기 위해 벽을 쌓아왔지만

요즘 점점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계속 눌러왔던 불편하고 상처받은 감정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예기치 못한 순간 감정이 터져 나올까 두렵다.

그리고 감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무너질까 봐

또다시 힘겹게 벽을 세운다.


회의가 끝나고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이질감이 든다.

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는 걸까


그래도 자리를 지킨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동안

간신히 붙들고 있던 감정들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감정 기록 질문지]

● 최근에 ‘그냥 자리에만 있었다’고 느낀 순간은?

● 일은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은 이유는?

● 그 자리를 나는 왜 버티고 있었을까요?


[Title Card_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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