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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

by 고대현

금일 주간에 어머니가 음식을 시장에서 사줬다. 나는 그저 받기만 했다.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용돈도 수령했다. 갑자기 궁금했다. 나이에 걸맞기 위해서는 용돈 자체를 수령하면 곤란한 것일까? 나는 해답을 모르겠다. 그저 사실을 의미했을 뿐-

잔소리가 시작이 되었다. 누옥에 있지 않아야 타당한 신체가 골방에 있으니까 어머니는 내가 보기에 아마도 신물이 난 것 같았다. 질타는 아니었다. 호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잔소리를 시작해서 끝내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로 한다. 달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도망을 갈 곳도 없다. 누옥은 벗어나더라도 누옥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어수선한 골방을 간단하게 청소하고 어머니는 자취를 감췄다. 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어서 상념에 잠겼다.

불현듯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음! 그렇다.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다. 과거에는 각기 주어진 영광스러운 삶을 포기하는 인간들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다시 그러한 사실을 내가 감히 고찰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시의 판단은 오판이었던 것 같다. 정정이 가능하면 정정을 하고 싶다. 그러나 정정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닐까?

이내 고개를 젓고 골방에서 신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누옥에 있지만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은 - 아직까지는 믿는다. 그러나 믿음이 스러지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나는 다시 상념에 잠긴다. 그러는 사이에 구성원은 나를 또 다시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이제 좀 질린 것 같다. 인간에 대해서 질린 것일까? 삶에 대해서 질린 것일까? 삶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고 질린다고 표현을 하는 것일까? 인간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질린다고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순간은 현재 이 글에 마침표를 찍는 것 외에는 상책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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