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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연매장(软埋)’에 대해

소설 ‘연매장(软埋)’-2

by 탐구와 발언

중국대륙에서 출간되는 문학작품중 선전 수요에 영합하는 존명문학(遵命文学) 류와 대중 오락용 여가문학(消闲文学)류를 제외하면, 소위 엄숙한 일부 순수문학만 남는다. 이 같은 순수문학도 대다수가 현실과 역사와 인심을 직면하지 못하고, 오직 관방이 획정한 새장 안에서만 창작행위를 한다. 이 같은 문학은 실제로는 볼만한 가치가 없다. 그러나 ‘연매장(软埋)’은 다르다.

53-연매표지.png.jpg 중국어판 표지

아래 사진은 2017년 4월 22일에 우한(武汉)의 공농병(工农兵) 독자가 개최한 팡팡의 소설 《软埋》에 대한 비판 좌담회의 한 장면이다. 대부분 노령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는 데, 벽 위의 플래카드에, “《软埋》는 한 포기 큰 독초!” 라 쓰여있다.

53-연매장.jpg 소설《软埋》비판회(方方微博图片)


사진 속의 인물들이 늙고 쇠약하고, 마오쩌뚱 복장을 입고 있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는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의 신문이나 선전물에서 복사해 온 것 같이 여겨졌다. 흡사 시간과 공간이 다시 뒤집혀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 ‘연매장(软埋)’을 비판하는 언어가 “봉건지주계급을 위해 혼을 부르고”, “토지개혁운동에 대한 반격, 재산탈환” 등등, 완전히 문혁 시기 "대비판" 어투였다. 곧 이어서, ‘연매장(软埋)’이 온라인 플랫폼 서점 판매대에서 사라지고 판매가 중지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 소설의 저자 팡팡(方方)은 후베이성(湖北省) 작가협회 주석이다. 즉, 관방이 문화계 대표인물로 지정한 사람이다. 이런 작가조차 이 같은 대우를 받으니, ‘극좌’비판자들의 영향력의 크기를 알 수 있다. 문혁이 끝난 지 이미 40여년인 현재의 중국 대지에 여전히 이러한 문혁 충신들이 당당하게 바람과 비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역사적 반성과 교훈조차 구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헛수고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토지개혁운동은 중공이 창당 출범후 착수 발동한 운동이고, “토지혁명전쟁”이라고도 부른다. “토호 타도(打土豪), 경지 배분(分田地)”이 바로 이 전쟁의 구호였다. 마오쩌뚱은 ‘호남농민운동고찰보고’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농회를 반대하는 토호 열신(土豪劣绅)의 집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가서, 돼지를 잡고 곡식을 빼낸다. 토호 열신의 아가씨, 작은마님의 상아침대 위에도 밟고 올라가 뒹굴 수 있다. 토호열신에게 높은 모자를 씌우고 끌고 다니면서 외친다. “이놈 열신아, 오늘 우리를 알아봤지!”

마오쩌뚱은 이 같은 “깡패(불량배)”를 동원한 운동방식에 대해, “아주 좋다”고 외쳤다. 국공내전 중,중공은 토지개혁운동을 시작했고, 이로써 전선의 관병의 사기를 효과적으로 고무할 수 있었다. 이 운동은 1949년 10월, 중공이 통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후에도 1952년 무렵까지 지속되었다. 토지개혁에서, 큰 무리의 지주 부농 및 그 가족들이 비판대회에 끌려가고, 살해되고, 집에서 쫒겨나고, 토지자산은 몰수 당하고, 심지어 일부 지주 가정의 부녀자와 하녀들은 가난한 농민에게 강제로 배분되었다. 이것이 이 소설 ‘연매장(软埋)’의 소재이다.

중국의 독자는 거의 70년전의 이러한 사정에 대하여 결코 낮설지 않다. 근래에는 중국 대륙의 신문과 잡지에서 토지개혁중의 잔혹한 투쟁과 지나친 행위에 관한 발표를 자주 볼 수 있고, 또한 관방이 그에 대해 금지하려는 어떤 동작을 하는 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매장(软埋)’은 도대체 무엇을 썼기에, 상술한 바와 같은 문혁식 비판과 징벌을 야기한 것인가? ‘연매장(软埋)’을 읽어보면, 이는 토지개혁운동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소설이 전혀 아니다. 실제는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인성을 해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 구성은 기이하고 곡절이 많다. 세사람의 지주 후루윈(胡如匀), 루즈차오(陆子樵), 동푸칭(董朴青)의 가족 모두가 폭력적 토지개혁으로 인하여 생명 궤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여주인공 딩즈타오(丁子桃)는 친정 가족들은 살해 당하고, 시댁 가족들은 집단으로 연매장(软埋) 방식의 죽음을 선택하고, 자신은 시아버지 루즈차오(陆子樵)의 유언 및 당부로 흙구덩이 속에서 죽은 가족들의 시신에 흙을 덮어주고, 비밀통로로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후,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상태에서 향신 지주의 며느리에서 보모가 되고, 종국에는 치매를 앓다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죽는다. 그녀의 기억과 공포도 그렇게 ‘연매장(软埋)’된 것이다.


딩즈타오의 아들 우칭린(吴青林)이 모친의 마음속 응어리와 자신의 곤혹을 풀기 위해 진상을 탐구하던 과정에서 자신을 놀라게 하고, 억압하는 과거역사를 발견한다. 그는 복잡하게 얽힌 역사 갈등 다발을 받아 들일 수 없음을 감지하고, 결국 도피와 망각을 선택한다. 수많은 평론가들은 ‘연매장(软埋)’의 핵심이 토지개혁운동 묘사라고 여기고 있고, 이 소설이 비판을 받는 것도 바로 토지개혁의 잔혹함의 한 부분을 사실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토지개혁 묘사 여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선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간 본성의 갈등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중국의 작가중 보기 힘든 것이다. 중국 작가의 통상적 폐단은 종종 역사적 대사건의 묘사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고, 그 대사건 중에 인간성의 섬광을 드러내는 데에는 소홀하다는 점이다.


소설 ‘연매장(软埋)’ 중, 주요 인물의 진면목은 모두 덮여있다. 딩즈타오(丁子桃)는 강가에서 구조된 뒤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자신의 이름조차 그녀를 구해준 의사 우자밍(吴家名)이 즉석에서 지어준 것이다. 그녀는 생을 마칠때까지 자신의 기억과 투쟁한다. 우자밍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의 가장 큰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아마도 당신이 기억 못하고 있는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된 우자밍이 교통사고로 죽은 현장에서, 잠재된 의식 속에서 “연매장은 안되요, 나는 이이를 연매장할 수 없어”라고 울부짖는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암흑 속에 숨겨진 그녀의 과거를 훔쳐볼 수 있게 된다.

딩즈타오(丁子桃)의 남편 우자밍(吴家名)은 스스로 더욱 깊고 두껍게 연매장(软埋)했다. 그는 본래 산시(山西)의 대지주 동푸칭(董朴青)의 장남으로 상하이의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지주 가정의 도련님이었는 데, 상하이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고향 마을 어귀에서 만난 집안 종복에게 가족 모두가 토지개혁 비판투쟁대회에 끌려나가서 처참하게 학대 받고 살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 상태에서 깊은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기진맥진 쓰러진 후, 성이 오(吴)씨인 한 늙은 사냥꾼에게 구조된 후 그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사냥꾼의 산속 오두막 거처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부자가 부상 당하고 산 속에 쓰러져 있던 중공 해방군 간부 류(刘) 정치위원을 발견, 구조 및 치료해 주고, 류(刘) 정치위원의 권유로 그를 따라 산에서 나와 해방군 군의관을 거쳐서 의사로 살게 된다. 이후 우자밍은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진정한 내력을 숨기고 살았다. 그는 결코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고, 또한 남겨 놓은 일기에 자신의 아들에게 집안의 역사를 필히 모두 잊으라고 당부했다.

한국어 번역판 표지

딩즈타오(丁子桃)와 우자밍(吴家名) 사이에서 출생한 우칭린(吴青林)은 규율을 잘 지키고 과부가 된 모친에게 효심이 지극한 당대 젊은이이다. 그는 자기 부모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의 조각들을 발견 및 탐구해 낸 후, 고민 끝에 자신이 이 같이 무거운 역사적 짐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과 가족의 과거와 역사를 단호하게 끓고, 망각하겠다는 선택을 한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이 한 가정의 세 사람, 즉, 우자밍(吴家名), 딩즈타오(丁子桃) 부부와 그들 사이의 아들 우칭린(吴青林) 모두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고, 모두 흘러가버린 가족간의 정과 현실중의 생존이란 두가지 역량으로 찢겨져 있다. 작가 팡팡은 기교가 뛰어나다. 그녀가 공들여 구성한 소설의 구조는 현재와 과거를 대조하는 두개의 줄거리 라인으로 추동하며 발전시켰고, 매번 이야기의 줄거리를 막다른 길로 밀어 낸 후 다시 얽힌 매듭을 풀었고, 다시 세밀하게 바느질한 세부 줄거리로 덮어서, 비록 이 소설의 길이가 길지만, 읽다보면 문장변화 기복이 풍부하여 감동하며 읽게 된다.


소설의 색채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지주에 대한 토지개혁 투쟁을 묘사하면서 작가 팡팡은 그 군중운동의 잔인성과 인간본성의 복잡성을 회피하지 않았다. 역사를 회고 및 전망하며 묘사할 때에도, 작가는 조금도 칭송이나 악마화하지 않았고, 단지 차분하게 사실 상황을 서술했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서 독자는 칭린(青林)이 과거를 잊고, 평안하게 더욱 양호하게 생활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같은 무력함과 슬픔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과 망각, 친척 간의 정과 배반, 자살하는 용기와 그럭저럭 살아가는 비겁함, 이 같은 세익스피어 식의 인간 본성 주제들이 소설 속에 설득력있게 표현되었다. 설사 저자가 쓴 게 토지개혁이 아니고, 내전, 항일, 문혁 혹은 유태인 대학살이라 해도 이러한 주제의 섬광은 여전히 이 소설이 색다른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현대 중국소설중, 위화(余华)의 《许三观卖血记(허삼관 매혈기)》, 《活着(인생)》, 천중스(陈忠实)의 《白鹿原(백록원)》등과 같은 작품의 작가 외에 팡팡처럼 심각한 비극적 소재를 다룰 줄 아는 능력과 기교를 가진 작가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같이 침통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작가도 몇 명 안될 것이다.


《软埋》의 출판이 결코 중국출판계의 정상적 상태는 아니지만, 출판 후의 진행과정은 중국사회의 진보와 후퇴의 궤적을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문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었으므로, 중국 문단에 문혁과 반우파투쟁 등의 사건을 반영한 우수한 작품들이 한 다발 출현했다. 예를 들면, 《芙蓉镇》, 《天云山传奇》, 《许茂和他的女儿们》 등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매우 환영 받았고, 대부분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인들이 과거를 반성하며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현재, 문화대혁명 등 건국후 운동을 돌아보는 작품의 출판이 거의 없고, '연매장(软埋)'과 같은 작품조차 문혁식 대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연매장(软埋)’을 비판한 우한(武汉) 공농병 좌담회 바로 다음날에, 의외로 “루야오 문학상(路遥文学奖)”이 소설《软埋》에 수여되었다. 시상자 측 평가위원회는 이 소설이, “강대한 역사 관통력과 미학의 풍부성을 구비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 닥친 비난은, 한편에서는 중국사회의 분열과 사상 대립을 반사 돌출시키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사회의 진보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https://youtu.be/JcuCFpgr_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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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번역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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