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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길(我们的路)-(1)

중국현대소설 번역 연재: 罗伟章의 중편소설 '我们的路'

by 탐구와 발언

중국현대소설을 읽는 재미는 문학적 맛 외에도, (중국내 통계자료나 관방 보고서 류를 통해서는 감지할 수 없는) 중국 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고 실감나게 맛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중국 농민과 농민공의 정황을 묘사한 중편소설 한편 번역, 연재 시작합니다. (아직 국내에 한국어 번역 소개가 안된 작품입니다.)



매표소에서 나오자 춘매(春妹)가 바로 다가와서 물었다.

“오뺘, 우리 좌석이 같이 붙어 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몇번 본 후에 말했다.

“춘매야,어쩌냐, 마지막 한장밖에 없다”


그 말을 듣자 춘매의 눈에 눈물이 촘촘이 새어나와서, 깊고 굽은 그녀의 속눈썹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따바오(大宝) 오빠, 오빠가 차표를 갖고 고향에 가. 나는 못가면 그만이지”


농민공

춘매의 울음과 애걸하는 눈빛…, 그런데 그 눈빛에 나는 화가 났다. 그녀는 내앞에서 울어서도 애걸해서도 안되지 않는가. 춘매는 고향 떠나온 지 이제 1년 여 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장장 5년이다. 집에는 아내가 있고 또 딸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미 그들의 모습을 잊었다! 내가 떠나올 때 채 석달도 안되었던 딸아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아내의 얼굴이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녁때 아내 얼굴을 떠올려 보려 하면, 어느 순간엔 이런 모습, 또 어느 순간에는 저런 모습으로 바뀌며, 떠돌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며 도무지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든 가족을 보러 다녀와야겠다. 이번에도 가지 않는다면 그녀들을 영영 잊어 버릴 것 같다.


그러나 현재 내 손에는 오직 한장의 표만 쥐어져 있다. 춘절은 하루 반 나절도 안 남았고, 이 열차를 놓치면 춘절 후의 표를 사야 한다. 빨라도 정월 초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나는 망설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일하고 있는 그 건축공사 현장은 정월 5일에 일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곳 광동에서 나의 쓰촨(四川) 동북부 고향집까지는 어떻게 간다 해도 최소 이틀은 걸릴테니 나는 집에 가서 엉덩이도 덥히지 못한 체 총총히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장이 고의로 억류해 놓은 두달 치 노임을 포기해야 한다. 나는 모질게 맘을 다져 먹고 춘매가 자기 열차표를 사달라고 준 돈을 다시 그녀 손에 쥐어 주었다.

농민공

  춘매는 절망 상태에서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이제 막 만 16세이지만 그 모습만은 어른 같았다. 눈에는 절망이 가득 차 있는 데, 또한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이기도 한, 그 자제된 냉정함이 무서웠다.


  춘매가 말했다. “오빠 조심해서 가, 고향에 가거든 우리 아빠,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해선 안돼, 응……”

“오빠 믿어라, 나는 아무 말도 안할 것이다.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춘매가 다시 소리없이 울었다. 눈물이 촘촘이 앳된 얼굴에 번졌다. 그녀는 소리없이 울고 있지만, 등에 업힌 갓난아이는 소리내며 울었다. 아이는 그녀가 한달 반 전에 낳았다. 남자아이다. 깡 말라서 쥐새끼 같이 보였고, 울음소리도 그랬다. 앵애앵애~. 춘매는 포대기 치마 위로 아이의 엉덩이를 안고,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얼렀다. “오 내 귀한 아가 배고프지, 아가 젖먹고 싶지, 엄마가 알아, 엄마가 곧 우리 아가 젖먹여 줄께”


그 사이, 그녀의 눈물이 더 많이 나와서, 깡마르고 누런 두 볼에서 뾰족한 턱으로 흘러내리며 물줄기를 이루고,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그녀의 앞가슴을 꽤 넓게 적셨다.

  그것은 젖이 아니고 정말로 눈물에 젖은 것이었다. 낳은 지 얼마 안된 아기를 몸에 업고, 동여 맨 두개의 끈이 중간에 조여주고 있긴 해도 젖이 나온 건 아니었다.

  누구라도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나는 그녀 손안의 돈을 다시 빼앗아 움켜쥐고 동시에 내 손안의 한장뿐인 그 열차표를 그 손에 쥐어주고, 재빨리 몸을 돌린 후 인산인해의 광저우(广州)역 광장을 가로 질러 나와서 시외 장도(长途)버스를 타고 포산(佛山)시 공사현장으로 돌아왔다. (계속)


중국어 원문 출처:《小说选刊》2006年第1期

작가 뤄웨이장(罗伟章),1967년 쓰촨성(四川省) 출생, 1989년 충칭(重庆)사범대학 중문과 졸업, 현재 청두(成都) 거주. 대표작: 장편소설 《饥饿百年》《不必惊讶》《大河之舞》《磨尖掐尖》《太阳底下》《空白之页》《声音史》등. 중편소설집《我们的成长》《奸细》. 중단편소설집《白云青草间的痛》. 산문수필집《把时光揭开》《路边书》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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