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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길(我们的路)(4)

중국현대소설 번역 연재, 罗伟章의 중편 소설, ‘我们的路’

by 탐구와 발언

  이불과 요를 묶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명확히 깨닳지 못했다. 격정이 발 바닥에서 용솟음치며 마음 속으로 올라올 때에 스스로 물었다. “이번엔 집에 가야지?”

  그렇다, 이번엔 집에 가야 한다. 인적이 끊긴 이 깊은 밤에 농민공 보따리 면가방을 들쳐 메고 떠나자. 사실 내가 굳게 맘을 먹고 가면 누구도 나를 잡을 수 없다. 사장의 처남은 말할 것도 없고, 사장 본인도.

농민노동자(농민공)

정말로 나를 잡고 있는 것은 사장 손에 억류된 두달 치 노임이다. 그 돈이 힘센 두개의 손아귀처럼 강하게 나를 움켜쥐고 끌어 당기고 있다. 내가 그 큰 손아귀에게 말한다. “나를 놓아줘, 나는 집에 가야 해”

  그러나 그들은 나를 놓지 않는다. “바보야, 니가 이제 가서 표를 사면, 오직 정월 2일이나 3일 표를 살 수 있을 텐데, 이곳 광동에서 너의 고향 쓰촨까지 가는 데만 며칠 걸린다. 그러니 너는 결코 정월 5일 전에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내 마음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에겐 한푼의 돈도 친척과 같이 소중하다. 어떻게 자기 친척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 사장 녀석, 마치 외국인 신사처럼 멜빵 바지를 입고 있는 그 놈에게 준단 말인가, 그는 나의 그 돈을 세어 보지도 않을 것이다. 놈은 그것을 담배연기가 자욱한 도박판에서 써버리거나, 방금 데리고 놀았던 아가씨의 얼굴에 던져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나는 정말로 망설여졌다. 다리까지 풀렸다. 나는 말아놓은 이불 위에 앉아서 찬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나를 움켜쥐고 있는 그 두 손이 다시 말했다. “만일 네가 초닷새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너는 우리뿐만 아니고, 더욱 많은 친척들을 잃게 될 것이다. 너는 다시 너를 받아줄 공사현장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이 도시가 하늘보다 넓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공사현장은 곳곳에 있지만, 이 도시도 공사현장도 네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너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너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워질 것이다. 너의 사방은 모두 절벽이 되고, 너는 빛도 길도 못보는 가련한 바퀴벌레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러나 대수로울 건 없다. 그래, 도시의 가련한 바퀴벌레인 내가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고향 집은 나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 그 척박한 땅에서는 나는 적어도 가련한 벌레는 아니다. 한 사람의 진정한 인간이다. 도리가 이런 데 무엇을 더 기다리고 망설이는가? 가자, 집으로 가자, 두달치 노임, 그거 사장녀석에게 줘 버리자. 놈이 도박을 하러 가건 아가씨와 놀러가건 그것은 그의 자유다.

  나도 나의 자유가 있다. 나의 자유는 두달치 노임을 포기하고, 이 보따리를 들고 고향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귀향
귀향 농민공

나의 고향집은 따바(大巴)산맥 남쪽 끝자락 라오쥔산(老君山) 아랫 배 정도에 위치해 있다. 안즈스(鞍子寺)촌이라 부른다. 매우 오래 전에 그곳에 절이 있었다. 산이 높고 길이 가팔라서, 복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1900년대 중반에 큰불이 나서 불당을 재로 만들었다. 한명은 늙고 한명은 젊은 두명의 중은 그때부터 사방으로 떠돌아 다녔다. 수년 후에 촌에서 절터에 소학교와 유치원을 지었고 안즈스 소학교라 불렀다. 주변 촌의 아이들이 모두 이곳에 와서 공부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이 학교의 동쪽에 있고 지세가 높고 낮음에 따라 서너 개의 농가가 같이 쓰는 3개 층의 큰 공터가 있고, 우리 집은 그중 가운데 공터에 있다.


내가 고향 마을 입구에 올라섰을 때는 정월 초나흘 이른 아침이었다.

  안개가 짙어서 마을 입구의 그 큰돌이 위로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돌 위 이곳 저곳에 눈더미가 있었다. 며칠 전에 눈이 내린 흔적이다. 뱀 같은 작은 숲길을 걸어가면 눈앞에 농경지 들판이 보인다. 주위 사방이 매우 고요했다. 모든 것이 깊은 잠 속에 있을 때 눈이불 밑의 보리싹만이 숨죽이고 자라고 있었다.

  마을 서쪽 편 공터에 들어섰을 때 내 발소리를 듣고 개가 짖을까 걱정되었다. 개가 짖으면 낮선 사람이 들어온 것을 알게 되고, 잠에 취한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서 내다 보게 된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열차를 타고 와서 매우 피곤하고 남루해 보일 것이다. 얼굴엔 수염이 자랐고, 어깨에 맨 낡은 헝겊 가방 이곳저곳에 난 구멍으로, 터진 이불 속에서 삐져나온 낡고 묵은 솜이 다시 삐져나와 있었다. 이것이 5년만에 돌아온 나의 초라한 몰골이다.


나는 특히 춘매의 부모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하는 일일수록 닥치게 된다. 서쪽 공터의 나무 아래를 지날 때에 개 한 마리가 안개 속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춘매네 개였다. 춘매네 집은 높은 담이 있고, 그 담 위에 허름한 개집이 있는 데, 8년 이상 키운 늙은 개가 거기서 뛰어 내려온 것이다. 이 개는 몸집이 매우 크고 온몸이 회백색이고 매우 사납다. 이놈이 몸을 날려 뛰어 올라서 하마터면 내 머리를 박을 뻔 했다. 다행히 나는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 손에 들고 있던 대나무 막대기로 놈의 구부러진 몸을 세게 한대 때렸다. 녀석은 재빠르게 짙은 안개 속으로 달아났으나 맹렬하게 짖어 대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진동시켰다.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따바오(大宝)냐?”

  춘매의 아버지 천라오쿠이(陈老奎)였다. 안개가 그토록 짙어서 2미터 밖은 흐릿한 데, 어떻게 난 줄 알았을까? 나의 발걸음 소리를 알고 있단 말인가?

  나는 친밀하게 또 긴장된 어투로 대답했다. “네 접니다. 라오쿠이 아저씨, 일찍 일어나셨네요.”

  대답 없이 그가 개를 나무라는 소리만 들렸다. “죽고 싶니, 이제 따바오도 알아보지 못하냐!”

  그리고 매우 심한 기침소리가 났다.

  이 틈을 타서, 나는 재빠르게 떠났다. 도망치듯이.


집이 눈앞이다. 대나무숲을 지나서 돌계단 스무 걸음 더 내려가면 우리집 앞문이다. 그러나 나는 앞문으로 가지 않고, 대나무숲 대각선 방향으로 비스듬히 내려가서 뒷문 앞에 섰다. 앞문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다른 집과 마주 보고 있으나 뒷문에선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왼편에는 소와 돼지를 기르는 부속 건물이고 오른쪽에는 분뇨 구덩이가 있다. 부속 건물은 30여년 전 부친이 살아 계실 때 지은 것이다. 부속건물의 들보와 기둥은 벌레에 의해 만신창이로 구멍이 숭숭 뚤려서 가볍게 흔들기만 해도 끊어지고 부러질 것 같다. 지붕 위에 덮여있는 억새풀은 한 부분이 바람에 날려갔고 남아있는 부분은 오랫동안 눈에 덮여서 곰팡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소우리는 비어있었다. 내가 집을 떠날 때도 비어 있었다. 당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광동에 가서 1년간 일하면서 돈을 부치면 돌아와서 소를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이 말을 듣고 마치 생활보장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소는 농민에게 절반은 양식창고이고, 또한 척박한 이 산속에서는 소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광동에 간 후 2년간은 한푼도 벌지 못했고, 5년간 송금한 돈이 총 3,100위안이다. 현재 소값이 올라서 이 돈으로 성우(成牛)를 사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돼지우리 안에서는 작은 돼지들이 꿀꿀거리고 있었다.

  귀향길의 흥분은 이미 절반 이상 식었다.


뒷문에 빗장이 걸려 있어서 문을 두드렸는 데 집안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동정이 없다. 나는 좀 더 세게 시커먼 문짝을 두드렸다. 얼마 후에, 안에서 물건이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급히 문이 열렸다.

  나의 아내 진화(金花)가 덥수룩한 머리 모양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내는 늙었다. 그녀는 이제 나보다 두 살 적은 26세였으나 보기에는 40대로 보였다. 이마와 눈꺼풀의 주름 하나 하나가 깊고 검었다. 그래도 그 순간, 나는 도시 사람들처럼 강렬하게 아내를 안고 싶었다.

  양팔을 벌렸으나 아내는 응하지 않았다. 여전히 문을 잡은 체, 의혹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벌린 팔을 놓을 곳이 없어서 문틀을 잡았다.

  “못오는 줄 알았어.”아내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 문을 두드렸는 데 왜 안 연거야?”나는 어설프게 화난듯한 어투로 대답하며 문안으로 들어섰다.


아내는 대꾸하지 않고, 더듬어서 등을 켰다. 커다란 아궁이, 약 반칸의 부엌, 돼지먹이통, 밥그릇, 대소쿠리와 젓가락 등이 부뚜막 위에 쌓여있다. 부뚜막 가장자리가 검게 그을어 있다. 오랜 세월 살림살이의 흔적이다. 검은 부뚜막 바닥에 듬성듬성 보이는 허연 줄기는 쌀죽 또는 닭똥일 것이다.

  마음 속에서 한줄기 혐오감이 솟아 나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혐오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내가 떠나기 전에도 바로 이런 모양이었다. 이 안즈스(鞍子寺)촌의 모든 주민의 집이 거의 모두 이런 모양이다.


“인화(银花)는?” 인화는 우리들의 딸이다.

“자요”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아궁이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성냥을 그었다. 나를 위해 세숫물을 데우려는 것이다. 땔감더미 안에 솔잎 한 무더기가 놓여있었고 소나무 가지 위에는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잔설이 있다. 이는 아내가 어제 오후 심지어 어제 저녁에 산에서 땔감을 해왔음을 말해준다.

우리 집 땔감 산인 라오쥔산(老君山)의 청강수(青冈树)는 매우 좋은 땔감이다. 불이 세고 오래 간다. 그러나 베려면 여간 힘이 든다. 나무의 재질은 그 화력보다도 야물어서 건장한 남자가 굽은 큰 칼로 손이 마비되고 진동을 느낄 정도로 내리쳐도 단지 몇 개의 잎만 떨어질 때도 있다.

이 크고 깊은 산속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같이 고생하지만, 나무를 베고 밭을 가는 일은 모두 남자의 일이다.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여인이 뼈속의 기력까지 쏟아 부으며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 까지 바쁘게 일해야 하는 데, 그래도 며칠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아내 진화(金花)가 바로 그렇게 늙은 것이다.

  게다가 아내는 류마티스병까지 앓고 있다!

  아내가 날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녀는 생활에 짓눌려서 오직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야 할지만 생각한 것이다.


아내가 아궁이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수차례 성냥을 그어댔지만 솔잎에 불이 붙지 않았다. 집안에는 노란색 연기가 피어 올라서 습하고 기침이 날 정도로 매캐해졌다. 연기가 아내의 머리를 휘어 감았는 데 아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 성냥을 그었다. 내가 일어나서 도우러 가려고 할 때 불이 피어 올랐다. 집안에 연기가 집밖 들판으로 날아가면서 아침 안개와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딸아이를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농민노동자(농민공)

나에겐 아버지로서의 감정이 낮설다. 그것을 익히기 전에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다섯살이다. 이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불러줄 것인가?

  방안도 부엌처럼 어수선했다. 벽 모서리에는 감자, 고구마, 그리고 호미가 쌓여있고, 벽에는 도롱이, 삿갓, 그리고 쟁기가 걸려 있었다. 이 같은 배치는 한 구석에 놓인 나무 침대를 이상하게 보이게 했다. 침대 위에는 모기장이 걸려있다. 이 시기에 모기장은 모기를 막기 위한 게 아니고 모기장 위와 옆을 옷으로 덮고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방안에 바람이 새지 않는 곳이 없다. 나는 흥분되고 또 한편으론 조심스럽게 모기장을 말아 올리고 안쪽에 누워있는 딸아이를 보았다. 작고 또 예쁜 아이의 저 얼굴, 내 기억 속의 지 엄마와 꼭 닮았다.

  “인화야, 인화야”

  두번 불렀으나 딸아이는 깨지 않았다. 아내가 밖에서 말했다.

“더 재워요. 감기가 일주일도 됐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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