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소설 번역 연재, 罗伟章의 중편 소설, ‘我们的路’
손바닥을 모으고 전기가 날 때까지 계속 비비고 나서 딸아이의 이마에 가져갔다. 따뜻했다.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딸아이의 귀에 대고 은밀하게 불렀다.
“인화야, 인화야”
아이가 두손으로 눈을 부비고 긴장과 호기심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 손으로 아이를 일으켜 품속에 안았다. 아이가 “응”하고 숨 한 모금을 내뿜었다.
나의 옷과 머리카락은 모두 안개에 젖어 있었다.
내가 딸아이에게 옷을 입히려 하자, 아이가 나의 팔에서 빠져나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울면서 외쳤다.
“엄마——”
아내가 뛰어들어왔다. 눈빛이 나와 딸아이 사이를 오가다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바보 계집애야, 니 아빠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눈에서 두줄기 눈물이 솓아나와 콧방울 사이로 스며들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딸아이는 철이 든 것처럼 일어나서 스스로 옷을 입었다.
나는 한손으로 아내를 껴안고, 침대가에 앉아서 딸아이를 껴안았다.
가족 셋이 이렇게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몸안에서 되살아났다.
5년 내내 나는 한 포기 뿌리없는 풀이었는 데 이제야 뿌리를 찾았다. 5년간의 막노동 생활의 쓰라림과 피로가 마치 썰물처럼 물러갔고, 내 몸속에서 뿌리에 싻이 트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후 다시 피로감이 몰려왔다. 마치 온몸의 뼈들이 물러져서 진흙탕이 된 것 같았다. 아내가 아직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딸아이를 끌어 안고 말했다.
“아빠 잠깐 여기서 자라고 하자”
방안 또 한편에는 다른 침대가 하나 더 있었지만 방금 전에 딸이 자고 일어난 이 침대가 따뜻했다.
앙증맞게 작은 딸아이가 뛰어내려와서 맨발로 저고리와 바지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잠깐 쉬세요” 아내가 내게 말했다. “당신 온몸이 젖었고, 얼굴도 부었어, 차안에서 눈도 못 붙인 것 같아”
이어서, 그녀가 나의 머리를 자신의 두 젖가슴 사이에 안고 모기장에 덧대어 걸쳐논 낡은 옷을 때어낸 후 옷감 안쪽으로 내 머리를 문질러 닦아 주었고, 다시 나의 젖은 상의와 바지, 그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갔다.
아내가 문을 닫고 나가자, 나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수년간 쌓여 있던 눈물이었다. ……
처음 광동에 갔을 때, 나는 어느 시멘트공장에서 운반공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시멘트 포대를 차에 싣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시멘트 포대가 찢어지고 시멘트가 터져 나왔다. 사장은 이 사고를 구실로 나를 공장에서 쫒아냈다. 공장에 들어가기 전에 100위안의 보증금을 냈었다. 공장에 들어가는 모든 농민은 보증금을 내야 하고, 무보수로 두달간 일을 한 후에야 노임을 받고, 보증금도 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공장에서 일한 지 40여일 밖에 안되었다. 따라서 40여일 치 노임을 못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100위안의 보증금마저 잃었다.
그후 수개월을 유랑한 후에, 그 도시 교외에 있는 숫돌공장에서 돌을 가는 일을 했다. 20여명의 직공이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하루에 16시간 더러운 물이 고인 바닥에서 허리를 굽히고, 두손으로 팔뚝만한 전기 브러시를 쥐고 석재에 광택을 냈다. 전기브러시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자극했고, 다시 옆의 작업장에서 전기톱 소리가 더해져서 전체 간이 천막 안의 공기를 갈갈이 찢는 것 같았다.
광택을 내기 전에, 각종 형태의 석재 위에 접착제를 발라야 하는 데, 이 접착제에 독성이 있고, 전기 브러쉬로 털면 하얀색의 독성 가루가 우리의 얼굴과 몸 전체를 덮었다. 작업 10분도 안되서 머리카락이 모두 흰색으로 변하고, 땀에 젖은 팔뚝 털까지 마치 서리가 내린 것처럼 된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우리 농민공이 어떻게 그렇게 비싸게 굴 수 있겠는가? 하루 일하고 나면 옷이 흠뻑 젖는다. 앞가슴에 비닐포를 둘러도 사방에서 튀는 물방울이 모여서 옷을 적신다. 속옷과 팬티까지도 땀에 젖는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필사적으로 일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알록달록한 지폐를 받을 생각을 하면서, 마음 속에 따뜻한 희망을 가득 품었었다. 그러나 사장은 우리에게 노임을 주지 않았다. 넉달 치가 밀렸는 데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탁자 위에 놓였던 석재 한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사장은 바로 그 석재 옆에 서 있었고, 즉시 큰 소리로 욕을 뱉었다. “이 돼지들, 석재 놓는 것도 제대로 못 하다니, 너희들은 모두 돼지 백치다.”
그는 그 부서진 조각들 위로 올라가서 짓밟다가, 접착제가 발라진 조각을 밟고 미끄러 넘어지면서 그의 살찐 엉덩이가 깨진 석재 부분에 찔렸다. 그가 통증에 이를 드러내고 만면을 찡그렸다.
우리는 즉시 달려가서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그는 우리 손을 뿌리치면서 계속 욕을 했다.
“씨발, 돼지들아, 이 몸에 더러운 손 대지마!”
그는 스스로 일어나서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한손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성난 소리로 질러댔다. “무릎 꿇어!”
우리는 모두 멍해져서 그의 그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또렷하게 말했다. “누구건 꿇어 앉지 않으면, 4개월치 노임을 받을 생각은 마라”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45세 가량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기 몸쪽에 있는 물통 옆에 꿇어 앉았다. 축축한 머리카락을 늘어 뜨려, 누렇고 거무잡잡한 얼굴을 가렸으나, 입가에 보이는 하얀 거품 선이 보였다. 허약한 몸으로 매일 8시간 입가에 흰 거품을 달고 힘겹게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인이 무릎 꿇고 앉자, 한 사람 두사람 계속 이어서 무릎을 꿇었다.
남은 건 오직 나뿐이었다.
사장의 눈길이 천천히 내 얼굴로 옮겨왔다.
나도 꿇어 앉았다.
내가 고향집을 떠나온 게 바로 돈벌기 위해서였지 않나? 집의 방이 너무 좁아서 사람과 가축이 거의 같이 살고 있다. 땅바닥이 습해서 아내의 병이 계속 낫지 않고 있다. 나는 돈을 갖고 돌아가서 새집을 짓고 아내 병을 치료해 주고, 또한 딸아이가 장래 학교에 가고 공부할 돈을 모아 두어야 한다. 무릎 꿇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젖은 땅바닥에 반시간 꿇어 앉은 후, 사장이 우리에게 일어나라 했다.
그때 한번의 경험으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사람은 천지를 향해 꿇을 수 있고, 부모에게 꿇을 수 있고,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에게도 꿇을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사장에게 꿇어선 안된다. 한번 꿇으면, 그의 등뼈는 다시 곧게 서지 못한다. 그후에는 오직 기어서 다녀야 한다. 즉, 그는 실제로는 인간이 아닌 게 된다.
그후에도 우리는 다시 사장에게 수차례 더 무릎을 꿇었다. 원인은 모두 탁자 위에 놓은 석재가 떨어져 부숴졌기 때문이었다.
두번째에는 그것이 사장이 우리를 다잡기 위해 고의로 한 수법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단 우리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도시내의 수많은 사장들이 모두 고의로 물건을 손상시키는 방법으로 농민공을 길들인다는 말도 들었다. 고의로 물건을 손상시키고 그 다음에 민공을 징벌하는 것...... 그들은 이 방법이 농민공을 관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장은 우리를 꿇어 앉히고 나가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씨발,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런 백치 돼지들을 때거지로 기르고 있으니!”
그가 “기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마누라가 우리에게 밥을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금을 내지 않고 밥을 먹는다. 한끼를 5위안으로 계산해서 이후에 노임에서 제하기로 했다. 우리가 서서 일하고, 무릎까지 꿇은 건 돈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우리 노임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다 그해 섣달 26일 아침에 사장이 들어와서 말했다. “오늘 안에 저 흙뚝 위에 있는 물건을 모두 해치워야 한다. 시간과 품질에 맞춰 임무를 완성하면, 모래 여러분 모두에게 노임을 지불하겠다!”
그 순간 몸안의 피가 슝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내 얼굴도 틀림없이 붉게 상기되었을 것이다. 입가에 흰 거품을 묻히고 있는 그 여인도, 접착제 분말 가루에 덮히지 않은 귓부리가 곧 그곳에서 피가 터져 나올 듯이 붉어져 있었다.
평소 흉악했던 사장이, 그날은 유난히 친절하게 굴었다. 그 날은 사장이 우리에게 백치나 돼지라고 욕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노임을 받으면, 집에 가서 명절(春节)을 잘 보낼 수 있을거다.”
우리는 마치 몸에 여덟 개의 손이 달린 것 같이 일했다. 오후 세 시에 모든 석재를 전부 다 다듬어 냈다. 사장이 사람을 시켜 검수하고, 한 차 한 차 연이어 계속 밖으로 실어 날랐다. 해 질 녘까지 실어 나르니, 석재를 쌓아 놨던 흙둑이 텅 비었다.
저녁 먹을 때, 사장이 말했다. “모레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모두에게 정산해 주겠다. 내일은 모두 쉬어라. 고향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놀러가도 좋다. 광동에는 놀만한 곳이 많다. 모두들 맘 편하게 나가서 다녀봐라. 누가 농민공은 놀 수 없다고 하나, 농민공도 똑같이 놀 수 있다. 아닌가!"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말은 사장이 우리도 '사람'으로 여긴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밖에 나가 놀 수는 없었다. 또한 아무도 고향 사람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모두 돈 받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