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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성 Jan 10. 2024

쑤쿠(訴苦)운동(1)

중국현대사(23)

운동과 법치

동비우(董必武)

“우리들은 지금까지 '운동'으로 먹고 살아왔는데, 헌법이 제정되면 그때부터는 법령에 의거하여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1953년, 중공 정권이 출범한 지 4년 만에 헌법 초안에 대한 회의에서 당시 국무원 부총리 겸 ‘정치법률위원회’ 주임이었던 동비우(董必武)와 부주임 겸 베이징시 시장이었던 펑전(彭真)이 쉽다는 표정으로 렇게 말했다고 한다. 






펑전(彭真)

그러나 중공은, 헌법 공포 이후에도 수차례 대규모 ‘운동’을 추진했다. '운동'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범위가 모호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할 수 있때문이었다. 특히 토지개혁을 ‘청산 투쟁’ 방식으로 추진하는 데에 '운동' 방식이 편리하고 효과적이었다.


마오쩌동은 1957년, 소련 방문 기간중,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는 중에 중공의 성적을 자랑하면서 “중국은 앞으로도 1, 2년에 한 번은 운동을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공산당의 핵심 수법은, 혁명이건 통치이건, "노동 해방"이니 "착취 계급 절멸", 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 등, 장밋빛의 그러나 매우 추상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고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는 게 바로 공산당이라며, 당에 대한 일체의 비판적 발언을 모두 "반동", "반혁명"으로 매도하고 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을 위해서 광대한 대중의 헌신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선전, 선동한다.

그러나 그러한 장밋빛의 추상적·이상적 목표들이 실현되는 시기, 또는 실제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과정을 오직 공산당 일당독재체제가 영도(領導)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그 근거라며 거론하는 것이, "마르크스가 이미 과학성을 입증했다"는 사회주의 이론과 자신들의 배타적 권력 독점을 위한 공산당 일당독재체제 도그마이다. 즉, 그렇게 단순하고 추상적인 관념의 틀 속에서 조작하여 형상화한 몽상 청사진을 내걸고, 인민들을 현혹, 선동하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히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들 개개인 중에 스스로 그 같은 관념적 도그마를 신앙으로 내재화하고 있는 소시오패스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중공은, 마르크스보다 먼저 '사회주의' 이론과 청사진을 제시 및 제안한 개혁가 또는 몽상가 선배들을 비판할 때 규정했던 것과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는 바로 그런 성격의 개념, 즉, "추상적"이고 "비과학적", "공상적"인 구호와 선전, 선동술로 군중을 견인, 동원했다.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개인과 세력은 "반역사, 반혁명, 반동,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운동" 방식으로 제압하고 청산했다. 그렇게 당당하고 기세등등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혁명 신앙과 사명감에 고취되어 있다고 자부하며 긍지를 느끼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쑤쿠(訴苦) 운동

이 같은 "운동" 방식 중 가장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 쑤쿠(訴苦)운동이었다.

쑤쿠(訴苦)란 과거에 당한 고통(苦)을 호소 또는 고소(訴)한다는 뜻으로, 지주로 대표되는 구사회의 반동파 지배계급이 노동 인민에게 준 고통을 고소한다는 의미이다.


쑤쿠(訴苦) 운동은 제2차 국공내전 당시에 인민해방군 장병에 대한 계급 교육과 토지혁명투쟁 추진을 위한 군중 발동의 주요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운용되었다.

이는 다수를 점하고 있는 피착취 계급에게 과거에 당한 고통을 회고하면서 현재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억고사첨(憶苦思甜)’ 전략의 일환이었다.

 수쿠(訴苦)대회 장면

1947년 6월, 중공이 전국 범위의 전략적 진공을 결정한 후 동북 지구의 ‘동북민주연군(東北民主聯軍)’이 1947년 9월부터 추계공세(秋季攻勢)와 동계공세(冬季攻勢)를 통해서 그 다음 해인 1948년 3월까지 국민당 군대 20만여 명을 섬멸하고 지린성 쓰핑(四平)과 안산 지구 내의 33개 도시를 접관했다.


중공은 추계공세와 동계공세 기간 중 서만주(西滿)와 남만주(南滿) 지구에서 전쟁 수행을 위한 동력 확보를 위해 쑤쿠(訴苦)운동과 토지혁명투쟁을 전개했다.


인민해방군 지휘관과 전투원 대부분은 빈농, 고농 가정 출신이었기에 그들은 모두 지주계급으로부터 참혹한 수탈을 당한 경험과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을 토지혁명투쟁과 결합하여 장병들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방식으로 추진한 것이 쑤쿠(訴苦)운동이다.




뤄롱환(羅榮桓)


뤄롱환(羅榮桓)의 시도


1947년 당시 중공의 동북 지구 대병단(大兵團)의 작전 중, 정치공작을 책임지고 있던 뤄롱환(羅榮桓)이 자신의 휘하 부대에서 시도한 쑤쿠(訴苦)운동 경험을 부대 전체로 확산 보급하여 장병들의 전투의지를 증강시켰고, 이후 이 경험을 보고받은 마오쩌동의 지시에 의해 인민해방군 전군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쑤쿠(訴苦)대회

쑤쿠(訴苦)운동의 전형적 모습을 예로 들면, 모 사단내의 한 종대(縱隊)에서 토지혁명투쟁교육과 결합하여 고생 경험이 많고 원한이 깊은 병사, 그리고 원래 국민당 병사였으나 포로로 잡힌 후 전향한 병사들을 선정하고 이들이 대오에 참가하기 전에 당한 고난을 동료 병사들 앞에서 발표하게 하고, 다른 병사들도 각자 자신의 고난을 회고하고 털어놓도록 부추겼다.

이어서, 분반 토론을 통해서 병사들 모두가 자신의 고생 경험을 털어놓고 그 고생의 원인을 따지도록 지도했다.


병사들은 한편으로 고생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장제스와 국민당에게 진 원한과 빚을 갚겠다는 각오를 다지도록 지도했다. 쑤쿠(诉苦)운동은 연이은 승전에 따라 증가하는 국민당군 포로의 전향 교육에 특히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면, 쑤쿠(訴苦)를 통해서 자신이 “국민당 군대에서 복무할 때에 조상과 부모가 당한 수많은 고난과 가난한 인민들의 고난을 잊었다. 따라서 금후에는 필히 공산당과 함께 혁명을 하고 전쟁에서 적을 사살하여 공을 세우겠다”라고 말하며 전의를 다지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농촌의 토지혁명투쟁 현장에서도 쑤쿠운동을 이용했다. 예를 들자면, 부대 주둔지에 장씨 성을 가진 한 소작농이 십 년 넘게 입은 누더기 솜옷을 입고 있었다. 솜옷에 솜은 몇 겹 남아 있지 않았고, 기운 자리 위에 또 덧대어 기운 누더기 옷이었다.

지도원이 그 누더기 솜옷을 들고 강습소에 와서 군중과 문답 형식의 대화를 진행한다.


지도원: 이런 누더기 옷은 누가 입는가? 지주가 입는가?


군중: 지주는 밑씻개용으로도 더럽다고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누더기 옷은 소작농이 입는다.


지도원: 국민당이 가난한 소작농의 이런 누더기 옷을 바꿔줄 수 있을까?


군중: 해줄 리 없다. 국민당은 지주와 부자들의 당이다.


지도원: 그렇다면 누가 가난한 사람들의 누더기 옷을 바꿔줄 수 있을까?


군중: …….


이때, 군중 대오 중에 배치해 놓은 적극분자가 일어나서 자신의 아버지도 이런 누더기를 입었었고, 지주 또는 보갑대 대원에게 맞아서 눈이 멀었다고 말하며 설움이 복받친다는 듯이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땅바닥을 두드리며 대성통곡을 연출한다. 잠시후, 지도원이 그를 불러내고 군중 앞에서 더욱 실감나고 구체적으로 쑤쿠(訴苦)하게 한다.

쑤쿠(訴苦), 토지혁명투쟁 장면

뤄롱환은 이 같은 쑤쿠운동 경험을 1947년 8월 26일 자 '동북일보(东北日报)'에 ‘부대 교육의 방향’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발표하고 “쑤쿠(訴苦)운동은 군대 교육 공작 분야에서 극히 중대한 의의를 지닌 창조”라고 제시했다. 그는 “이 같은 군중성 쑤쿠운동을 통해 죄악은 절대로 단독으로 또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은 지주의 착취"라고 강조하면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소극적인 병사와 순박한 농민들에게 한손으로는 토지를 분배해 준다는 당근을 눈 앞에서 흔들고, 또 한 손으로는 “너도 지주 편이고 반혁명이냐?”라고 손가락질하며 협박했다.




https://youtu.be/8E3iqRlT40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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