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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Dec 30. 2022

얼떨결에 결혼, 아무튼 중년 2

이제부터 진짜 어른?

어른의 정의는 다 자란 사람. 결혼한 사람.

그러니 나는 완벽한 어른이다!


어른을 향한 강렬한 콩깍지 덕에 꿈을 이뤘으니 부러울 게 없었다.

몇 번의 형식적 절차를 잘 참아 넘겼을 뿐인데 어른이 되었고, 얼떨결에 한 결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생소한 날의 연장이었지만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고, 내 식구를 챙기는 일은 적성에 맞았다.(참 바보 같지만 어릴 적 두 번째 꿈은 현모양처였다.) 직장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완벽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내가 바라던 환상적인 어른의 삶이 이런 거구나 싶어 신나게 페달을 밟았다.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다.

어른이니까.


옆에 있는 든든한 내 남자덕에 실실 쪼개며 이십 대를 보냈다. 그렇게 멋있고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이십 대의 내 친구들은 대부분 미혼이었다. 자유분방한 그녀들은 해외여행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약을 올렸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너네 남편은 있냐?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서로 패턴이 맞지 않으니 약속은 자주 펑크가 났고, 모임은 점점 줄더니 봄날 눈처럼 스르르 사라져 갔다. 소식이 끊겨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았다. 나중에 애들 다 키워놓고 실컷 보자며 세월 속에 묻어두고 씩씩하게 잘 버텼다.  비워진 친구의 자리는 금세 새로 사귄 '시'자 붙은 가족들로 채워졌다.

얼떨결에 한 결혼에 심심할 틈은 없었다. 부모 노릇도 자식 노릇도 어렵지만, 어른으로 살아가는 과정은 꽤 근사했다.






기쁨으로 삼십 대를 맞이했다.

조금 더 멋진 어른, 조금 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두 아이를 잘 키워내려면 24시간 내 눈 안에 있어야 했다.

'그래, 좋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자!'

그 길로 새 공부를 시작했고, 보육교사로 거듭났다. 노력 끝에 나의 직장과 두 딸의 어린이집을 한 지붕 아래 두는 데 성공했다. 셋이서 손을 꼭 잡고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했다. 우리는 각자의 교실에서 꿈을 키워갔다. 바라던 바를 이루었으니 구름 위를 걷는 듯 행복했다.  

그러나 곧 그 행복은 돌덩이가 되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 딸들은 서서히 엄마를 잃어갔다. 원에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옆 반 선생님이었고, 집에 돌아오면 살림하느라 정신없는 아줌마에 불과했다. 나의 능력과 경력이 쑥쑥 자라는 사이 엄마의 꽁무니만 쫓던 두 딸은 애간장을 녹여야 했다.  

나는 두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학사일정이 같다 보니 늘 내 직장 일이 우선이었다.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아이들을 홀로 입학식장에 세워 둔 일이다. 어린 시절 내 딸들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엄마는 온통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내 반 아이들을 잘 키워낼 욕심에 정작 배 아파 낳은 내 새끼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냈다.

일 욕심 많고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해야 했던 내 성격을 탓하며, 불편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내달렸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느라 진땀이 났다.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나는 사십 중반, 얼떨결에 중년이 되어있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사이 내 나이 곧 오십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먼 미래가 떡 하니 배달되어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중년이 되었다고 휘청거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멀쩡한 척 자존심을 세우는 중이다.

'겨우 반 세기 정도 살았을 뿐이잖아. 지나온 시간을 후회한 들 뭘 어쩌겠어?'

눈 깜짝할 새 가버린 청춘이 아까웠지만, 살아온 날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니 그리 아쉽지만은 않았다. 다행이 내 딸들은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주었고, 둘도 없는 내 편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여전한 청춘이니 그걸로 된 거다.


요즘 여기저기서 내 몸에 '중년'이라는 이름표를 덕지덕지 붙이며 굳이 확인을 시킨다. 휘청거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는 날도 있다. 사실 어른이 되어보니 별거 없다. 별거 없다 못해 따분하고 재미없다. 오히려 고되고 힘든 날도 많다. 제법 폼나게 익어가는 것 같아 마냥 좋기만 하더니 슬슬 겁도 난다.

어쩌다 보니 어른의 나이가 되었고, 중년이라는 감투를 썼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멀어도 한참 먼 어른의 세계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나이가 차곡차곡 쌓여가면 그걸로 완전한 어른인 줄 알았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100세 시대, 살아온 날만큼 앞으로 더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방황을 해서라도 내가 바라던 찐 어른의 삶을 잘 살아내야지.






'올해도 다 갔구나!'

걱정 반, 미련 반으로 달력을 보며 겨우 이틀 남은 올해를 거꾸로 세어 본다. 그럴수록 불안이 커진다는 걸 잘 알지만 떼를 써서라도 시간을 늦추고 싶은 걸 보니 영락없는 아이의 마음이다.

중년의 삶을 '안정기'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10대 때도 하지 않았던 방황을 시작하기로 했다. 잠시 숨 고르기 끝나면 꿈꾸던 진짜 어른의 길을 향해 다시 달려 볼 참이다. 완벽한 어른이 아니라도 좋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자.

아무튼, 지금 나는 방황하는 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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