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어쩔 수 없는 J형 인간. 그러니 생긴 대로
저질 체력을 붙들고 꾸역꾸역 살아가던 마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볼일 보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졌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바닥과 천장이 뒤집혀 돌았다. 변기통을 붙잡고 전날 먹은 음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다. 널브러진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같은 일을 서너 번 반복하고 나니 만사가 귀찮았다. 이명과 이석증으로 여러 해 시달리던 몸은 대상포진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지 몰라 어이없고 허무했다.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쉼 없던 삶에 무기력과 번아웃이 찾아왔다. 사느라 바빠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여유도 없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의 테두리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벗어날 구멍 하나 없이 촘촘해서 숨이 막혔다. 정신력 갑이던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휘청대는 마흔을 살고 있었다.
‘잠시만 멈춰야겠어.’
‘네가? 겁쟁이잖아. 할 수 있겠어?’
마음과 마음이 팽팽한 겨루기를 했다. 무려 다섯 해 가까이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했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는 현실이 복잡하고 원망스러웠다. 몹시 지쳐서 울컥거리고 눈물이 났다. 백세시대, 아직 절반도 못 살았다 생각하니 억울했다. 저질 체력을 끌어안고 나약한 정신으로 중년을 건너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도망가자. 가서 놀자!’ 마흔다섯, 중년의 나이에 퇴사를 결심했다. 모두의 걱정과 만류를 뿌리치고.
고3 둘째도 곧 성인이 될 것이고, 직장생활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림은 나름,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제 좀 쉬엄쉬엄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적을 두었던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도망치듯 탈출했다.
내 나이 마흔다섯, 백수가 되었다!
마지막 퇴근길,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개 들어 하늘을 봤다. 2월의 잿빛 하늘과 앙상한 나뭇가지가 허락 없이 눈물샘을 ‘툭’하고 건드렸다. 괜찮을 줄 알았던 감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아이 C, 보란 듯이 웃으며 손 흔들고 나왔는데 어쩌라고?’
‘백수 기념 파란 트레이닝복 한 벌 사러 가야지.’ 했던 마음을 접고 매일같이 오가던 은행나무 길에 차를 세웠다. 라디오 켜고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야근하는 동료들의 분주함을 바라보며.
퇴사 후 첫 한 달은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바빴다. 묵혀둔 살림을 꺼내 정리하고 온 집안을 반짝반짝 광냈다. 은행, 병원, 서점에 출근 도장을 찍고, 목욕탕에 가서 한가로이 낮 목욕을 즐겼다. 평일에 바깥일 보는 기쁨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식구들을 위해 장을 보고, 하루 세끼 밥하는 게 행복했고, 낮에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온 집을 뜯어고칠 기세로 셀프 인테리어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지인들에게 핸드메이드 선물을 하느라 묵혀둔 재봉틀을 꺼내 밤낮없이 돌려댔다. 백수가 더 바쁘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엄마랑 평일에 시장 떡볶이를 먹다니!”
딸들은 소소한 일상에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중요한 행사 때마다 덩그러니 홀로 세워두고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못 간 엄마가 밉지도 않은 모양이다. 남편은 살림에 애쓰지 말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내 편인 사람들, 여유롭게 즐기는 커피와 책, 휙휙 지나가던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아침 산책. 모든 게 완벽했다. 무엇보다 축 늘어져 있을 줄 알았던 몸이 무기력하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생각보다 지루함은 빨리 찾아왔다. 반복되는 일상이 심심하고 밋밋했다. 계절을 담느라 반짝이던 아침 산책길의 시선은 출근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바빴다. 나 홀로 느린 달팽이가 된 것 같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거면 충분해. 어차피 길게 놀 거 아니었잖아.’
‘괜찮아, 좀 놀면 어때. 천천히 즐겨봐.’
마음과 마음이 다시 겨루기를 시작했다.
나는 혼자 놀 줄 모르는 바보였다. 어렵게 벌어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멈추어 본 적도, 사람을 벗어나 살아본 일도 없으니 금방 심심하고 불편해질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백수를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딱 한 계절, 아니 상반기만 건너가 보기로 했다. 천천히 계획대로.
안 되겠어! 제 버릇 개 못 주는 걸 어쩌겠니?
성격대로 놀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은 갑작스럽게 일을 저지르지 않는 J형 인간. 퇴사 결심부터 이미 계획적이었다. 잠시 숨 고르기 하고 나면 지친 몸과 마음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백수 기념 백일잔치를 치르고 나면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조금 이르게 권태로움이 찾아온 거다. 몸을 놀리지 못하는 사람이니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다음 날부터 옷을 차려입고 서재 방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벽에 큼지막한 달력을 걸고 나만의 사무실을 꾸렸다. 일과표를 짜고 시간표에 맞춰 움직였다. 미련한 나의 뇌를 속이면 백일 정도는 슬기로운 백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계획적으로 운동하고, 계획적으로 살림하고, 계획적으로 노는 ‘백일백수’가 목표였다. 기대했던 모습은 아닐지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조금씩 말라 가는 통장과 25일 앓이(평생의 월급날)로 마음이 덜컹거리기는 했어도 규칙적이고 생산적으로 노는 게 좋았다. 그래도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는 계획대로 사느라 바쁜 '일 중독자'가 되어야 했다.
봄을 지나 여름을 끝으로 백수 탈퇴 선언을 했다. '바쁨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를 인정하고 나니 아쉽지 않았다. 아침 밥상에 보글보글 냉잇국을 끓여 올리고, 저녁 식단을 짜며 콧노래를 불러 대던 중년의 백수 생활은 끝이 났지만 잠시 행복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성장하는 기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는 그해 가을, 또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인생 세 번째 직업에 적응하며 살아내는 동안 휘청대던 사십 대의 끝이 보인다. 나는 몇 해 전 완벽히 누리지 못한 '백일백수'를 꿈꾸며 다시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