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두 얼굴

여름의 기쁨과 슬픔

by 달보드레

여름의 끝자락에서 가만히 여름을 떠올려 봅니다. 끈끈하고, 눅눅하지만 그래서 녹진한 계절. 벌레와의 전쟁, 장마철의 꿉꿉함, 환풍기 앞을 지나는 것만 같은 후끈한 공기, 끝을 모르고 치솟는 불쾌지수. 이 모든 것들과 싸우다 보면 여름이 미워지기도 해요. 아, 얼른 지나가 버렸으면. 그런데 막상 선선한 바람과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를 맞이하니, 스쳐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 끝자락을 붙잡고만 싶어요. 우거진 녹음의 싱그러움을, 슬퍼질 만큼 청량히 반짝이는 여름의 추억들을.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초입에서, 책갈피를 꽂아두고 꺼내볼 이 여름날이 그리워집니다.


여름이 주는 기쁨은 셀 수 없을 만큼 숱해요. 여름, 이 계절엔 풋사과 한 입 베어문 듯한 청량함이 세상을 감싸요. 뜨겁다 못해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서 청량함을 느끼다니 참 신기한 일이지요. 푸르른 잎새와 옅은 청색의 바다, 축축하고도 달큼한 과즙이 흘러나오는 복숭아와의 입맞춤, 물감으로 정성스레 칠한 것 같은 샤베트빛 노을. 이 사랑스런 여름의 자욱들을 어찌 애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름’ 하면 ‘청춘’이 절로 떠오르곤 해요. 봄처럼 앳되고 푸르른 청춘들이 빛나는 시기를 만끽하는 모습이요. 나의 상상 속 그들은 울긋불긋 물드는 까치놀 아래, 무지갯빛 물방울을 튀기며 찬연히 웃음 짓고 있어요. 나도, 너도, 일상도 잠시 잊어버리고, 그들의 세상엔 ’지금, 여기, 우리’ 뿐이에요. 마치 악보 위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통통 튀어 오르는 음표들 같아요. 지지직거리는 필름카메라로 찰칵.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마음에 고이 담습니다.


닿을 수 없는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여름은 기쁘지만 슬프기도 해요. 끈적한 우기의 빗물을 따라, 버스 창가에 맺힌 물방울을 따라 그리움의 선율이 흘러요. 한때 사무치게 소중했던 나의 시절인연들이 흘러가요. 펑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부서지는 파도처럼. 어느새 낮보다 밤이 더 길어진 계절에, 아스라이 피어난 달무리 아래 떠올립니다. 그토록 환하고 찬란했던 낮의 계절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