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3 우리의 첫 차 이야기.
내 첫차는 EF소나타다. 2000년식. 2014년 결혼 직전 와이프 지인이 이민을 가게 되어 타던 차를 물려받았다. 2014년 11월 당시 나는 완전 장롱면허 상태였기 때문에 갑자기 차가 생겨 운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운전 연습 하는 겸 받아보자고 해서 차를 받기로 했다. 차를 주시는 분은 분당에 사셨는데, 갈 때는 버스 타고 갔다가 올 때는 대리기사님을 불러 같이 타고 집까지 왔다.
2014년 11월 차를 받아올 당시 185,000킬로미터를 탄 차였고, 2000년식이었기 때문에 가져오자마자 카센터에 가서 차를 맡겼다. 60만원 정도 부품을 갈고 신나게 타고 다녔다. 그 차를 가지고 운전 연수도 하고, 결혼식 할 때도 타고 가고, 아기 낳고 집에 올 때도 그 차로 데리고 왔다. 전국을 다 다녔다.
그 차 타고 다니면서 재미있는 기억이 많다. 차를 받아와서 운전 연수를 받고 한 달도 안 되어서 부산 장거리를 뛰게 되었는데 한남대교를 지나서 경부고속도로 진입하던 구간에 어디로 진입하는지가 헷갈려서 고생했다. 차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까딱 잘못하면 압구정으로 들어갈뻔했다. 다행히 잘 진입해서 어찌어찌 부산까지 갔는데 왕초보 운전자인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와이프의 모습이 난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또 2017년쯤인가 아기 낳기 전 와이프랑 둘이서 강릉 놀러 갔다. 대관령 삼양목장에 갔는데 3월에는 차를 몰고 삼양목장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단다. 그래서 신나게 올라갔다. 마치 이 차가 오프로드 차인 것처럼. 그냥 막 몰고 올라가는데 몇 번 돌에 차 밑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전에도 그 정도로 부딪힌 거는 몇 번 있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쭉 갔다가 잘 구경하고 주차장에 내려왔는데, 차 소리가 이상하다? 우르릉 우르릉 하는 소리가 막 난다. 차가 계속 으르렁으르렁 거린다. 왜 이러지 싶어 중립으로 놓고 액셀을 밟아봤는데 우르르르르릉 우르르릉 한다. 뭐야 람보르기니야? 포르셰야? 스포츠카 같은 소리가 난다.
아차 싶었다. 아까 올라가다가 머플러가 깨졌나 보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하지? 차는 계속 으르렁 거리고 얼른 가까운 블루핸즈 정비소를 찾아가니 수리 비용이 60만원 넘게 든다면서, 정비사님이 이 차에 그 돈 주고 수리하실 거예요? 한다. 나도 그건 아니다 싶어 다른 사설 정비 업체를 막 찾아서 갔다.
근데 마침 가는 길에 강릉 시내 한 복판을 지나게 되었다. 주말이라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그냥 쓱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신호등에 딱 걸려서 멈춰 서게 되었다. 차는 계속 으르렁으르렁 거리고 있고, 사람들은 수군대며 지나갔다. 이거 뭐 EF소나타에 머플러 튜닝해서 다니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너무 부끄럽다. 차에는 선팅도 거의 안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꾸 눈이 마주친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지나가는 그 사람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빨간불로 바뀌고 출발하는데, 람보르기니의 배기음을 내뿜으며 간다. 시속 30킬로미터로.
다행히 사설업체에 차를 맡기고 잘 수리해서 집으로 왔다. 집에 거의 다 와서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확 줄인다. 깜짝 놀라서 클락션을 살짝 울렸는데, 클락션이 멈추지 않고 "빠아아아아아아앙" 계속 소리를 낸다. 깜짝 놀랐다. 집에 다 와서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당황했다. 차에서는 계속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리가 나고 있다. 와 이거 또 빨리 정비소를 가야겠다. 방향을 틀어 골목길로 들어간다. 차에서는 계속 빠아아아아앙 소리가 나고 있고, 길에 나와있던 할머니들이 깜짝 놀라 돌아본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다 돌아본다. 우리 차에는 선팅이 없기 때문에 또 그들과 다 눈이 마주친다. 와이프는 이번에는 진짜 부끄러웠는지 밑으로 고개를 숙인다. 어찌어찌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원래 가던 정비소로 갔는데, 아뿔싸 오늘 일요일이라 여기 문을 닫았다.
다시 갔던 길을 돌아 그 골목으로 다시 들어간다. 차는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리고 있고, 그 할머니들하고 또 눈이 마주친다. 와이프는 또 고개를 숙인다. 나는 이게 웃을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문을 연 정비소를 찾아 경적에 달린 퓨즈를 뽑아서 소리 나는 것을 해결했다. 등에 땀이 나는 순간이다. 그다음 날인가 바로 정비소에 가서 경적을 교체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이게 EF소나타 고질병이라고 한다.
그러고 한참 별일 없이 잘 있었다. 근데 어느 날 밤. 새벽 1시쯤 되었나? 집에서 안 자고 있는데 밖에서 갑자기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순간 설마 했다. 솔직히 좀 무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방에 있던 와이프가 비명을 지른다. 오빠 이거 우리 차인가 봐!!!! 창밖으로 내다보니 밖에 새워놓은 우리 차에서 갑자기 소리가 난다. 그때 들었던 그 소리.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와 새벽 한 시인데 미치겠다. 공구통을 뒤져 니퍼를 하나 들고 간다. 내려가보니 역시나 우리 차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고 있다. 아니 시동도 안 걸려있는데 경적에서 이렇게 소리가 난다고? 믿을 수가 없다. 옆집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등에서 땀이 난다. 퓨즈함을 열어봤는데 뭐가 경적에 관련된 것인지 정신이 없어 기억이 안 난다. 안 되겠다. 그냥 범퍼 위쪽에 경적에 손을 넣어 만져보니 경적이 막 울리고 있다. 거기 연결된 선을 니퍼로 끊어버렸다. 그랬더니 소리가 딱 멈춘다. 아유 다행이다.
터덜터덜 집으로 올라가는데 한 3분간 누군가에게 얻어터진 거 같은 기분이다. 온몸이 아픈 거 같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해서 다행이다. 다음날 정비소에 가서 또 경적을 바꿨다. 아마도 폐차장에서 가져온 재생품으로 교체를 했는데 그게 또 문제였나 보다. 재생품이라 돈 얼마 하지도 않았다. 5만원 정도 했나?
이거 말고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한여름에 차 타고 가는데 에어컨이 갑자기 안돼서 한참을 창문을 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렸는데, 알고 보니 에어컨 버튼을 안 눌러서 그랬었다. 그때 우리 딸 데리고 하동에 놀러 갔을 때였는데, 딸내미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속초 갈때는 진짜 에어컨 고장 난 적도 있고.
그렇게 2000년식 EF소나타는 우리와 함께 5년을 넘게 보냈다. 우리는 우리 차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영감님이랑 부산으로 무안으로 강릉으로 속초로 안 다닌 곳이 없다. 영감님 덕분에 운전도 많이 늘었다. 영감님은 우리와 함께 225,000킬로미터까지 달린 후 2020년 8월 처갓집에서 폐차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비가 엄청나게 왔다. 와이프가 처갓집에 있을 때였는데, 폐차하기 직전에 차가 마당에 서 있는 모습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폐차를 위해 견인차가 마당에 들어올 때는 영상통화까지 한다. 와이프가 갑자기 막 눈물을 흘린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우리와 처음 함께한 첫 차. 좋은 추억이 많은 첫차를 보내주는 게 가족 중 한 명이 떠나가는 느낌이었을까. 우리의 한 시절이 끝나감을 느끼는 것일까. 나도 약간 울컥하기는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영감님 고생 많이 했어요. 덕분에 즐거웠어요
그러고 우리는 중고차 사이트를 뒤져가지고 아주 상태 좋은 K5를 사서 이때까지 잘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