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 말고 추억해 주세요

송지영 작가님의 <널 보낼 용기>

by 오즈의 마법사

아주 예쁜 소녀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야무졌고, 성격이 워낙 밝아서 전학을 가도 금세 친구를 사귀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춤추기를 좋아하던 열일곱 살 서진이는 1년 전,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작은 별이 되었다.


부모의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아이는 결국 잘 자란다고들 말한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을 감싸 안아, 어떤 어려움도 반드시 견디게 해 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떠났다. 우리는 늘 아이 곁에 있었지만, 아이가 기댈 부모는 되지 못했다. 온 마음을 다해도 아이의 아픔 속으로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병을 알게 되었지만, 낫게 해 주진 못했다. -p33


이 고백은 최근 출간된 책 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에 담긴 엄마의 기록이다. 이 책은 자살로 딸을 떠나보낸 ‘자살 사별자’ 엄마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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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아니라 병이었다

밝고 씩씩했던 서진이는 어느 날부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쯤으로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 믿었다. 연극 무대와 축제의 댄스 공연에서 빛나던 아이는 밤이 되면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결국, 서진이는 우울과 들뜸이 교차하는 양극성 장애 2형 진단을 받았다. 들뜬 시기보다 우울함이 길고 짙게 이어지면 자살 충동 위험이 큰 질환이다. 주치의는 평생 갈 수도 있는 힘든 병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진이는 살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미 마음을 놓아버린 환자는 정말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서진이의 외할머니는 이상하게도 후련했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힘든 병이었으니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엄마의 눈가가 젖었다. 그건 체념의 눈물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받아내고 보내야만 하는, 아픈 용기였다. -49



이 이야기가 소설이길 바랐다

<너를 보낼 용기>를 읽으면서 나는 간절히 빌고 빌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소설이기를.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4년 전 떠난 내 조카 희수(가명)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잘 지내던 아이였다. 언니 결혼식에서 밝게 하객을 맞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희수는 우울증약을 복용하며 자해와 자살 충동을 반복해 왔고, 결국 약물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23살, 너무도 빛나는 나이였다.

장례식장에서 올케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고 있었다. 어떤 말도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아 그저 말없이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OECD 1위, 한국의 자살 현실

한국은 2003년 이후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28.3명으로 평균인 106명의 3배에 이른다. EBS가 입수한 <학생 자살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자살자 수는 예년보다 각각 약 3배 증가하였다. 자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도 고등 1학년에서 중등 3학년으로까지 내려왔다.

<EBS 뉴스> 2024.11.12.


연세대학교 송인한 교수는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면 평균 6명의 가족과 20명의 주변인의 삶이 흔들린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결속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그 여파가 더 깊고 멀리 퍼진다.

자살 생존자는 자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의 축이 무너진 사람이다. 남겨진 가족과 주변인 모두 생존자다.

서진이 엄마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슬픔에 무너지지 않고 삶을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서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기 위해서이다.



“그리워 말고 추억해 주세요”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엄마의 편지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랑하는 나의 아가, 우주에서 보면 우리의 시간은 모두 작은 점일 뿐이야. 너는 너로서 빛을 다했고 엄마의 우주 안에서 영원히 반짝일 거야. 열일곱 해가 짧았다고 한탄하지 않을게. 선물같이 너를 안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에 감사할게. 엄마 딸이 되어 줘서 고마워. 서진아 온 마음 다해서 사랑한다. 우리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 -p213. p214


지금도 여전히 많은 아이가 삶의 끝에서 흔들리고 있다. 제발 어른들이 아이들의 겉모습과 성적이 아닌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것이 진짜 돌봄이고, 진짜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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