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5명이 되었어요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었다. 이 감정은 토론에 서기 전에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익명성을 무기로 두려움을 상쇄시키고자 했다.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해 없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사전 작업이 친밀함이라면 번거롭게 그 작업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면님과 함께 첫 번째 독서모임을 하고 나서 신기하게 두 명이나 들어왔다. 순서대로 하지메님과 유메님이다. 하지메님이 들어와서 오픈채팅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된 것은 독서모임이 처음이라 걱정된다는 말이었다. 그런 것이 걱정이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 걱정을 덜어줄 수 있을까 하고 하지메님과 함께하기로 했다. 실제로 만나기도 전에 유메님이 들어왔다. 유메님은 나 소한, 가면, 하지메님과 달리 차 타고 20분 정도에 있는 동네에서 살고 계셨다. 그런데도 유메님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해 주신다고 하셨다. 가면님과 첫 만남이 있었는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네 명으로 불어났다.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싶었다.
4인석 테이블이 꽉 찬 모임이 되었다. 서로 독서모임을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했다. 네 명 모두 혼자서는 책 읽기가 힘들다는 점이 공통점이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메님이 처음이라서 걱정된다고 할 때 나는 동화책을 비유하면서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쉬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값진 내용이 나올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내가 모두 다 같은 성인에게 이런 조언을 해준 것이 참 부끄럽기만 하다.
독서모임 모임이 네 명일 때 지금의 독서모임의 초석을 다 닦아 놓았다. 특히 유메님이 다른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은 나머지 세 명이 유메님 동네에 가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양보하면서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독서모임에서 다룰 책 또한 돌아가면서 추천하기로 했다. 서로 골라주는 책을 무조건 읽어오는 것이다. 혼자 읽었을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독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되어 유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들 독서에 대한 열망과 온도는 다들 비슷해 보였다.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단지 코로나뿐이었다.
네 명이 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한 명이 더 들어왔다. 고고님 반갑습니다. 독서모임의 정체성이 익명인 것이 참 재밌는 게 직접 만나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이와 성별 모두 베일에 감춰져 있다.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활자뿐이었다. 고고님이 들어오셔서 다시 한번 독서모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나누었다. 매번 같은 이유가 공유되었다. 혼자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책을 좋아한다고 호소하는 나 조차도 과연 독서모임 없이도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을까 의심하니 말이다.
고고님이 들어오시기 전에도 장미님이 오픈채팅방 들어오셨다가 나가셨다. 소도시에 대한 실망이 인구수에 비례해서 문화력이 딸린다는 것이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노동집약적인 이 도시에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도 쉽게 무너지게 되었다. 남녀노소 그리고 나이 불문하고 모일 수 있는 이 익명 독서모임이 그 어떤 모임보다도 건강한 모임이라고 자신하고 싶었다. 이런 독서모임이 또 있을까? 찾기 쉽지 않을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