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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한 Feb 16. 2023

너희가 멍청한 거야

나만의 세계에 심취해 버린 나

항간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디선가 들어 본 개장수 이야기. 어느 날 개장수가 한 마을을 찾았다. 여러 집 중 하나에서 집주인이 나와서 자기 집 개를 판다고 개장수에게 다가갔다. 개장수는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집주인의 집을 찾았다. 개장수에 눈에 띈 것은 개 보다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개의 밥그릇이었다. 개장수는 집주인에게 개를 파는 김에 개 밥그릇도 달라고 했다. 집주인은 별 뜻 없이 수긍했고 개와 같이 밥그릇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개장수는 알았다. 그 밥그릇이 고려청자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 힘이었다. 고려청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 한 집주인이 한없이 멍청해 보였다. 나는 집주인 보다 개장수가 되고 싶었다.


역사 수업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 중에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본 사람을 찾았다. 나는 곧 장 손을 들었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어떤 책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교실에서 집중이 나에게 쏠렸다. 사방팔방 작게 우와 하는 소리는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주었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선생님의 칭찬은 나의 코를 하늘을 찌르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지 않고도 후광 입게 되었다. 외부에서 얻어진 자존심과 자존감은 당분간 쉽게 지속될 수 있었다. 그렇게 쭉 나는 책을 한 권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시험기간이 끝나는 그다음 주가 가장 싫다. 왜냐면 점수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번호 순서대로 호명하여 자기 점수에 의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게 했다. 배려 깊은 선생님은 모든 점수를 가려 본인 점수만 확인하게 했다.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선생님도 있었다. 친구들은 항상 내게 점수를 물어봤다. 나는 항상 거짓말을 했다. "나 이번 시험 망쳤어." 모든 질문에도 모두 답변해 내는 내가, 똑똑한 내가 그 점수를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이는 나 자신은 안다. 망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저 공부한 대로 나왔다. 딱 그만큼 덜도 말고 더더 말고.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것은 문이과 선택이다.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문과에서는 역사, 지리, 윤리, 사회문화 이들 모두 사회 전반적인 것과 연관된 과목을 배운다. 똑똑한 척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건 이과보다 문과였다. 매 수업시간마다 똑똑한 척할 수 있는 기회가 넘처났다. 선생님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은 나를 좋아했고 나 또한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이미지와 별명은 지식인으로 칭해졌다. 하지만 일 년에 네 번의 시험이 있고 치를 때면 항상 긴장이 되었다. 나의 영민한 이미지와 성적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미지가 상실될까 두려웠다.


고등학교 2학년에 대선이 있었다. 뉴스에서 여당과 야당에서 각 후보가 출마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야당 후보들의 단일화가 지지부진되고 있어 난항을 겪게 된 그때였다. 나와 비롯된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수업 진도 나가는 선생님을 호시탐탐 방해했다. 사회문화 수업이었는데 과목 특성상 삼천포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나는 선생님을 자극했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나는 사회문화 선생님의 부름으로 교탁 앞에 섰다. 난 그 자리에서 현재 대선 분위기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 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모두들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집중이 되었고 마치 권력을 얻는 듯하였다. 기분이 좋았다. 역시 나는 똑똑한 게 맞아라며 되뇌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닭장에 있는 닭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시각에서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이 누가 되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그들은 고개를 박고 책상만 바라만 보았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투표권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건지 개탄스러웠다. 연예계 소식들은 빠삭하고 게임 이야기만 하는 그들은 대통령 후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중 관심 있는 아이들은 1,2번 후보 정도는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조용히 미움을 키워갔다. 그래 공부만 하는 너희가 멍청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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