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단호함에 임금의 결정
중국 사신이 불편함을 가득 안고 중국으로 돌아간 후 임금도 리아 공주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여러 신하들의 걱정 담긴 투서도 곳곳에서 올라와 두통이 다시 시작된다.
생각이 많아진 임금이 수국정원을 거닐던 그날 밤! 임금의 두 눈에 젊은 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박 가배사와 리아 공주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임금은 어떻게 다음 행동을 해야 하나, 모른 척 돌아서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다른 이들의 눈에 띄는 것보다 자신에게 먼저 들키는 게 낫겠다 싶어 내시를 시켜 두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이렇게 쉽게 두 사람이 임금님에게 노출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한 두 사람은 놀라서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리아 공주는 두려움도 잠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간다.
"전하 리아 공주 들었습니다. "
"들라"
천천히 임금인 아버지 앞으로 리아 공주가 먼저 발을 내딛고, 공주 뒤에 박 가배사가 고개 숙여 서 있다.
"앉으시오 공주"
"네. 아바마"
공주의 목소리가 작아지며 낮아진다.
"뒤에 박 가배사도 공주 옆에 앉으시오"
임금의 목소리는 힘이 들어가 단단하다.
"네 전하"
떨리는 목소리로 공주 옆에 앉은 재이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한다.
"리아! 이 아비에게 할 말이 없나요?"
부드럽지만 단단한 임금의 목소리에 리아 공주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바로 호흡을 길게 한번 내뱉고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 저 리아! 가배사 재이를 흠모하고 있어요! "
리아 공주의 당당한 대답과 태도에 임금은 찻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복잡한 마음을 다 잡아보려 노력 중이다.
"아버지 저 중국 황제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저 조선의 하나밖에 없는 공주이며 지금 제 옆에 있는 가배사 재이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저희를 지켜주세요 네? 아버지! "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지만 리아 공주 말대로 중국 황제에게 시집보내는 건 더더욱 싫다는 생각을 임금도 하지만, 한편 리아 공주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배사 박 재이라는 것에 실망감과 당황함은 임금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리아 공주!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지 않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임금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박 가배사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이제는 화살이 재이에게 가고 있다.
"아버지 박 가배사는 잘못 없어요. 제가 좋아서 가배사를 쫓아다닌다는 걸 아버지가 더 잘 아시잖아요? "
리아 공주는 자신이 더 가배사 재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하여도 이해 지지 않으려는 아버지가 답답하였는지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 사랑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잖아요. 아버지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랑하셔서 결혼하셨잖아요. 저 역시 박 가배사를 사랑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진 저를 이해해 줄 줄 알았어요. 아버지가 이 나라의 임금이시고 제가 공주이긴 하여도... 아니 아버진 분명 저를 이해하시잖아요. "
곱게 화장한 얼굴이 슬픈 눈물로 얼룩이 져 있는 리아 공주를 바라보던 임금은 10년 전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 왕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맞아. 내가 사랑한 여인도 내의원 소속의 의관이었지. 그 사람이 바로 리아 공주를 낳은 내가 사랑한 여인'
죽은 왕비의 얼굴이 떠오르며 괴로움이 몰려오기에 두 눈을 감는다.
“리아 공주는 눈물을 닦고 먼저 물러가게. 박 가배사는 앉아서 기다리고!”
공주가 떠난 후 한동안 찻잔만 만지던 임금이 그제야 말을 한다.
“자네! 다른 건 묻지 않겠다. 자네도 공주와 같은 생각인가?”
재이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진심을 담아 답을 올린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만, 저 역시 리아 공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정확하게 단단하게 답을 한다.
다시 침묵이 흐른다.
“정말 마음이 변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 같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둘 사이를 갈라놓겠지만, 나 리아를 잘 알기에 다시 한번 묻겠다. 정말 우리 리아를 흠모하는가?”
임금의 방에서 물러나는 재이의 귓가에 계속 맴돈다.
“우리 리아를 정말 흠모하는가?”
“변치 않을 수 있는가?”
재이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가배원으로 걸어가는 두 다리는 힘이 빠지고 곧 쓰러지기 직전이다.
가배사 재이가 돌아간 후 임금은 리아 공주를 낳은 왕비가 그리웠다.
내의원 의관이었던 왕비를 처음 본 그날 임금은 사랑에 빠졌다.
하얀 피부, 맑은 두 눈, 아픈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 모든 게 임금의 눈에는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특히 임금이 열이 나서 사경을 헤맬 때 온 힘을 다해 애쓰던 그 모습에 임금은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마마마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던 게 지금 스쳐 지나가며 왕비가 보고 싶어진다.
‘그립소 왕비여 우리의 리아를 어찌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