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처음 공모전을 언제 내었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초등학교이고 나 때에는 국민학교! 아마 내가 공모전이라는 것에 글을 써 보냈던 건
초등 5학년때였다.
신문에 실린 00 생명 창작 동화작가 공모전이었던 같다. 아버지가 보시던 신문에 실린 것을 보고 나 참! 난 내가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아마 원고지 70-80 매였던 걸, 지금도 기억에 남는 추억을 더듬어 본다.
제목 현아의 착한 마음
편찮은 아버지와 학교 다녀오면 연탄불 꺼질걸 걱정하는 착한 현아의 마음을 쓴 것 같다.
우체국 가서 원고를 보내고 발표일 신문을 펼치던 나!
내 이름 없는 걸 확인하고 엄청 슬펐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긴다.
두 번째로 공모전이란 것에 글을 내 본 게 모 방송국 극본공모였다. 역시 내가 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때 내 나이 6학년!
무슨 배짱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무모한 일을 벌이게 된 데는 모두 주변인들 때문이었다.
6학년이 되었지만 5학년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많이 받던 나는 첫사랑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원고를 들고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나의 꿈이 소설가 시인인걸 알고는 옆반 선생님이 국어 전공이시니 옆반 선생님께 원고를 한번 봐달라고 하자 하시기에 난 너무 감사의 인사를 하며 원고를 드렸다.
그때가 겨울 방학이었는데 옆반 선생님이 오라 하여 갔더니
세상에 내가 쓴 원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띄어쓰기, 붙이기 , 빼기 등 교정기호들을 다 표시를 해 주셨다. 원고지 매수가 110매 정도였던 거 같았는데 옆반 선생님은 원고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빨간색 색연필로 표시를 해 주셨다.
그러니 난 당연히 또 공모전에 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못 낼 이유를 생각 1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쓰고 그냥 보냈다. 당연히 또.... 며칠 슬펐지만 지금 생각하니 또 웃긴다.
글을 끄적끄적이는걸 좋아했고 당시에 교실 뒤편에 각자의 꿈을 적는 장래희망란이 있어 난 항상 소설가 시인이었지만 무슨 배짱으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5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옆반 국어 선생님의 작은 관심이 지금도 내가 글 쓰는 걸 놓지 않게 하신 거 같다.
만약 그때 그 두 어른, 두 선생님이 "얘 뭐야! 얘 이건 안 돼"라고 했다면 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거나 올리지 못하겠지?
어른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한 아이의 꿈을 키우는데 크게 좌우한다는 게 사실이었다. 나를 보면 말이다.
겁 없이 덤비던 난 아직도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감사합니다. 5학년때 담임이셨던 이경미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옆반 선생님 성함은 기억이 안 나지 만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