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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의 서가 Apr 08. 2021

거장의 한마디 #5 미켈란젤로

조각가의 임무는 돌덩어리 안에 든 조각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Michelangelo(1475-1564)


미켈란젤로  Michelangelo(1475-1564)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각가이다. 그는  고전주의의 완성에 기여함과 동시에 힘찬 육체 표현과 복잡한 구성으로 매너리즘과 바로크 미술에 영향을 주었다.





미켈란젤로는 늘 주장했다.


"Every block of stone has a statue inside it and it is the task of the sculptor to discover it."


"모든 돌덩어리 안에는 조각상이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조각가의 임무이다."라고 


미켈란젤로의 말을 들으면 조각은 너무 쉽다. 조각가의 임무란 대리석에 갇혀 있는 천사나 다비드,  모세, 노예를 발견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돌들을 깎아내면 되는 것이니까. 그의 눈에는 조각을 하기 전에 대리석 속에 들어 있는  천사나  다비드, 모세, 노예가  보이는 것이다. 


(좌) 미켈란젤로, 돌에 갇힌 노예, 1530-34 (우) 미켈란젤로, 죽어가는 노예, 1513 미켈란젤로, 죽어가는 노예, 1513


미켈란젤로는 주장한다. 어서 나를 가두고 있는 이  돌들을 치워달라는 저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조각가가 할 일이란 필요 없는 나머지 돌들을 깎아내는 일이다.




조각 신동 


미켈란젤로는 그렇고 그런 조각가가 아니었다. 이미 10대 때 천재적인 조각 솜씨를 보여 메디치가에 선발되었고, 거기에서 저명한 학자들과 토론을 하며 상당한 인문학적 지식도 쌓았다.  <사티로스의 전투>는 미켈란젤로가 10대 중반에 만든 조각이다. 가히 조각의 신동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조각 솜씨에 불만이 있었다. 그가 원한 조각은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조각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해부학이 필요했다. 



미켈란젤로, 사티로스의 전투, 1492




해부학


전성기 미켈란젤로의 조각은 이전의 조각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가 만든 조각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현실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 미켈란제로의 조각이 이전의 조각과 다른 점이란 바로 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에 있었다. 그는 어떻게 이리 생생하게 인체를 표현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해부학적 지식 덕이었다.


(좌) 미켈란젤로, 앉아 있는 남성 누드, 1504년경   (우) 미켈란젤로, 리비아의 무녀를 위한 밑그림, 1511-2


해부학적 지식으로 미켈란젤로는 어느 위치, 어느 각도에서나 자유자재로 인체를 묘사할 수 있었다. 그는 뼈가 어떻게 붙어 있는지, 근육이 어떻게 붙어 있는지, 동맥이 어떻게 붙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직접 자기 손으로 인체를 해부하며 인체의 구조를 확인하기도 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그리기 위해 그린 <리비아의 무녀를 위한 밑그림>을 보라. 완벽한 인체 묘사를 위해 미켈란젤로는 우선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해부학적 지식에 의해 정확하게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그려진 인물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의복이나 장신구를 결정하고 밑그림 위에 그려 넣었다.




다비드(David)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다비드(David) 상이다. <다비드>는 1501년 피렌체시의 지도자들로부터 의뢰받아 만든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소년 영웅으로 이 작품은 다비드가 골리앗을 향해 막 돌을 던지려고 하는 장면이다.


미켈란젤로, 다비드, 1504.  CC Jörg Bittner Unna. Wikimedia Commons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다비드 상>을 만들었느냐고 물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You just chip away the stone that doesn't look  like David." 

 

      다비드처럼 보이지 않는 돌을 그냥 잘라 버리세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했던 어느 수험생이 생각난다. "조각이 제일 쉬웠어요!" 그냥 돌을 깎아내기만 하면 돼요? 말이야 쉽지만, 그건 조각 천재 미켈란젤로에게나 해당되는 말일뿐이다.


미켈란젤로 다비드 1504 https://www.wga.hu


16세기의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시대였다. 그는 이 시대 조각의 상징이자 전부였다. 물론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있었지만 미켈란젤로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는 미켈란젤로의 그늘에 가려져버렸다.


미켈란젤로, 모세상, 1513-15년경. 출처 Wikimedia Commons




미술은 영감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삼대 거장의 하나였던 미켈란젤로는 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원근법이나 역학 등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은 과학(science)이 아니라 창조(creation)라고 굳게 믿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술적 영감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의 임무란 돌 속에 갇혀있는 인물들을 끌어내어 생명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만든 조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돌 속에 갇혀 있는 노예는 돌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어서 자기를 돌 속에서 꺼내 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렇게 보면 정말 그의 말이 맞는 듯하다.


미켈란젤로, 깨어나는 노예상, 15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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