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에 있었다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1390-1441년경)는 유화 기법의 기술적 완성에 힘입어 세밀한 묘사 기법과 투명한 색채법에 의한 사실적인 표현으로 초기 플랑드르 미술의 사실적인 전통을 구축하였다.
15세기, 플랑드르에는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1395-1441)라는 대단한 화가가 있었다. 그의 대표작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이다.
이 그림은 아르놀피니라는 부유한 이탈리아 상인과 젊은 여인의 결혼식 장면이다.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이 성직자 앞에서 결혼을 서약하는 장면이다. 거울 속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성직자이다. 그리고 그 뒤에 아르놀피니가 이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반 에이크는 이 조그만 거울 속에 아르놀피니 부부를 비롯한 방안의 모습을 놀랠 만큼 정교하게 그려 넣었다. 그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더 놀라운 것은 거울 위에다 그가 써넣은 글자이다.
1434년, Jan van Eyck는 여기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이 결혼식의 증인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진이 없었던 먼 옛날에는 그림이 사건의 증거로 사용됐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그림 안에 실제 존재한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그림의 내용이 복잡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특징인데,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촛불은 성령, 즉 그리스도가 이 성스러운 결혼식에 임하였음을, 발아래의 강아지는 결혼에 대해 끝까지 충성할 것을, 창문 옆의 사과는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인간의 원죄를 잊지 말 것을 상징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재인식에서 출발했다면, 플랑드르 르네상스는 자기 주변의 생활에 대한 철저한 관찰로부터 시작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사실적이지만 조화와 균형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했다. 반면 플랑드르 미술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주변 현실을 사실적 기법으로 꼼꼼하게 묘사했다.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원근법과 해부학으로 뼈대를 세우고 화면을 처리했다. 반면에 반 에이크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해부학에 맞춰 뼈대를 세우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화가들과는 달리 한 사물을 끈기 있게 그린 다음 다른 사물을 그려 나갔다. 반 에이크가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철저하게 사물들을 묘사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유화라는 새로운 재료의 개발이 숨겨져 있었다.
반 에이크는 유화의 창시자로도 유명한 화가였다. 이전의 작가들은 주로 템페라라고 하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템페라는 색 안료를 계란의 노른자에 개어서 만든 물감으로 밝고 투명한 막으로 그림에 생기를 주는 특징 때문에 중세 시대부터 패널화에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템페라화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빨리 마르고 부드러운 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 아이크는 계란 노른자 대신 기름을 사용했다. 안료를 기름에 녹여 사용하니 마르는 속도가 느려지고 붓놀림이 자유로워져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물을 묘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잘못된 곳의 수정도 자유로워져 훨씬 정확하게 사물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반 에이크의 놀라운 그림은 그의 뛰어난 실력과 유화라는 새로운 기법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5세기 반 에이크가 발명한 유화 기법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화가들은 보다 정교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