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크가드너 Aug 06. 2024

'따로또국밥' 현대 가족의 찐이야기

쉼과 사랑이 필요할 때 모이는 공간



4명의 가족이 각자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 아버지의 도움으로 현재 학업 중이다. 딸은 학교 근처의 작은 원룸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공부이지만 새로운 분야라 따라가기가 버거울때가 있나보다. 전화가 오거나 '엄마 언제 쉬어?'라고 톡으로 신호를 준다. 그 신호로 3식구 아니면 4식구가 모인다.


이제 4학년이 된 둘째도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다. 아들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애인 농가 국대 트레이너로 알바를 하는 둘째는 이걸 핑계로 연락도 집에 오는 것도 소원하다. 필요할때만 엄마에게 전화를 해 오랫동안 너스레를 떤다. 모르는 척 용돈을 보낸다. 


작년에 퇴직한 남편은 바로 이어서 재취업을 해 부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집이에요?'라고 물으면 항상 '아니, 오피스텔이야.'라고 한다. 10개월이 넘어가지만 답변은 변함이 없다. 주말마다 올라오지만 반대로 난 주중에 휴무가 있고 주말에 더 바쁘다. 부산에서도 혼자, 집에 와도 혼자 남편이 많이 힘들어 한다.


나는 뒤늦게 취업을 하게 되어 남편과 떨어져 홈그라운드에서 혼자 살고 있다. 퇴근후 마지막 계단을 딛는 순간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는 듯하다. 일은 힘든 날은 정원 데크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텔레비전 앞엔 큰아이 졸업식때 편지와 건넨 작은 사진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남편과 아이들 어릴적 사진이 있다. 이 사진들은  정원과 함께 나에게 커다란 위안과 미소를 준다. 가끔은 가족들이 함께 했던 순간들이 그리워져  그 앞에 머물기도 한다.


같이 일하는 송팀장은 “실장님,  덕을 얼마나 쌓으셨어요? 나라를 구해야만 주말부부를 한다면서요.”라고 묻는다. “음~ 글쎄? 비법을 그냥 알려줄 수는 없지.” 이렇게 웃으며 넘기지만, 내 마음속은 복잡하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은 것은 좋지만 남편과의 접점이 별로 없어서 걸린다. 


남편이 주말마다 올라온다고 해도, 주중에 쉬는 나와는 잘 맞지 않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주말은 더 빡세게 일을 해야 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니 '여보 나 왔어. 저녁 먹었어?' 묻고 바로 쇼파로 직행한다. 남편과 나의 원래 그림은 여유로운 전원생활이었는데...



가족톡방은 썰렁할 때가 많다. 난 우리가족을 표현할 때 “따로 또 국밥”이라고 한다. 서로의 거리를 잘 유지하고 그 거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서운한 마음이 올라온다.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딸과 아들이 가까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무지 부럽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함께 도쿄 여행을 갔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었음에도 엄마 주변에 머무르지 않았다. 소라네 아이들은 엄마에게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엄마로서 부족한가? 정이 없나?’ 자책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얼마전  톡방에 큰아이가 소식을 올렸다. “영인이가 목금토 집에 갈 것 같은데, 저는 시간 많이 빼기가 어려워서 금요일 저녁 먹는 거만 가능할 것 같아요. 그날 엄마도 시간 되시나요?” “아빠는 목요일 저녁이나 금요일 오전에 올라갈 거야.” “엄마 금요일 쉬어.” 이렇게 오가는 사이에 딸아이의 SRT 왕복 티켓이 올라왔다. 남편이 딸에게 보낸 티켓이다. 남편 정말  빠르다.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맘을 알고 있을까? 

만나는 것이 이렇게 귀한 일이 되어버린 현실.


가족 모임을 약속하고 나니 내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남은 근무 시간이 휘리릭 지나갔다.


드디어 금요일, 이층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묵직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달려 내려가 얼른 아들에게 안긴다. “엄마, 집이 식물원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엄마가 바빠서 관리를 못하고 있어.” 나쁘다는 건 아니라고 덧붙이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정원 관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 불만스럽고 휴무일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집을 짓던 때가 코로나 시기였기에, 남편은 재택근무를 했고, 딸아이는 휴학 중이라 집에 내려오게 되었고, 둘째는 제대 후 복학 전이라 네 식구가 모두 함께 살았다. 4식구가 각자 원하는 것들을 하며 새로운 공간을 충분하게 즐겼다. 


큰 아이는 아기자기하게 방을 꾸몄고 둘째는 운동기구들로 공간을 채워갔다. 


집에 저장되어 있던 와인이 동날정도로 저녁 식사 시간에 많이 웃고 함께 이야기하며 보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했던 그 순간이 그립다. 가끔은 색다른 요리를 준비해 우리 부부를 즐겁게 하기도 했다.

딸아이의 이름 모를 스페인 가지요리가 특히 생각난다. 알려줬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운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한다.


아이들에게도 우리부부에게도 쉼의 공간이 되는 이 곳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올핸 망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