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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Jul 30. 2024

올핸 망했어

올해 망처 버린 텃밭 농사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음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첫해의 풍성했던 텃밭이 눈앞에 그려진다. 알록달록한 방울토마토, 빨갛게 익은 토마토, 보랏빛 가지, 초록의 고추, 노란 호박이 가득했던 집 뒤쪽 텃밭이 선명하다. 그 풍성함을 나누던 달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넘쳐났던 것들을 열심히 친구들에게 날랐다. ' 혜진아, 토마토랑 상추 가져다줄까?.' '좋지.'라는 답을 받은 이들에게만 가져다주었다.  '민수님, 혹시 상추 필요하신가요?' '좋죠, 감사하게 먹죠.' 알바 가는 길에 잠시 만나서 건네주면 민수님은 나를 빈손으로 보내진 않았다. 민수님네 아파트 벤치에서 10분의 데이트는 물물교환과 함께 정을 쌓아갔다. 고마운 텃밭이다.


  

텃밭 담당인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퇴비를 주며  텃밭을 가꾸었다. 코로나 기간이라 재택을 했기에 가능했다. 난 다른 건 못해도 풀을 뽑아주고 가지와 토마토 곁가지는 열심히 따주었다. 유선생의 도움으로 남편은 텃밭을, 난 꽃밭을 잘 가꾸었다. 그만큼 우리 부부의 정성이 들어가 상추 하나라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었고, 버리지 않고 먹을 사람들과 나눔을 했다.






직장이 멀어진 남편은 바쁘기도 하고 , 내가 다니던 곳은 인력감축을 해 감당해야 할 일이 더 많아져  더 이상 텃밭에 정성을 들일 수가 없었다. 작년보다 심은 작물의 종류도 개수도 대폭 줄었다. 모종을 사러 갈 여유가 없어 겨우 상추와 방울토마토, 토마토와 오이만 심었다. 앞집 휘 할머니가 주신 호박도 심었는데 흔적이 없다. 퇴비를 먼저 뿌리고 일주일 지난 후 모종을 심었다. 초기엔 풀을 뽑고 물도 주었다. 점차로 손길이 닿지 못한 뒤쪽 텃밭은  장마철이 지나니 작물보다 풀들이 더 자라 가지도 토마토도 대파도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풀이 텃밭을 점령을 했다. 보물 찾기를 해야 할 판이다.


남편이 집 옆쪽에 정성 들여 만든 텃밭에 심었던 상추들과 감자는 어디로 갔는지 볼 수가 없고, 완전  자소(보라색깻잎) 밭으로 변해있었다. 자소 사이를 들쳐보니 흙 위로 돌출된  감자가 초록으로 변해 있었다. 감자가 얼마나 자랐을까 많이 궁금했으나 여유가 없어 방치를 했다.




수원에 사는 꽃님이 언니 집에 놀러 갔다. 들어가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나 주방으로 눈을 돌리니 오븐에 구운 가지가 보였다. 그 옆으로  바구니에 한가득 방울토마토, 양파가 담겨 있다. 얼른 손을 씻고 가지를 하나 집어 먹으며, '언니 이것 진짜 맛있다.' '그렇지, 삶아서 무치니 물이 많아 이번엔 구워서 해보려고.' 워낙 가지를 좋아한 나는 자지 나물하나만 가지고도 밥 한 공기는 뚝딱 먹을 수 있다. 





'언니, 이번에 우리 집 텃밭농사는 정말 망했어요, 토마토는 3~4개 따먹었고,  가지 하나도 안 열렸어요. 언니네는 어때요?' '우리 집은 많이 열렸어. 괜찮은데. 너희 부부가 너무 바빠서 신경 못쓴 거 아니고?' '언니, 작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못했죠.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 봐요.'  우리 집 텃밭에서 얻지 못한 야채들을 한 아름 가지고 왔다. 공심째 장아찌와 가지와 방울토마토와 토마토와 양파로 가득 채워진 아이스박스. 고마움에 입꼬리가 심하게 올라갔다.




  꽃님이 언니 덕분에 저녁 밥상이 풍성해졌다. 언니가 준 가지로 가지밥을 하고 언니가 준 고추와 양파를 썰어 쌈장에 찍어 먹었다. 다디단  양파를 먹은 적이 있는가? 생양파가 이렇게 달기도 하구나. 익은 양파처럼 달았다. 아삭거리는 고추와 달콤한 양파의 맛이 혀끝에 남아있다.


'꽃님이 언니가 내년에 비타민 고추와 가지고추 심으래요.' '돌볼 시간이 없는데, 할 수 있을까?' '내년엔 내가 일을 안 할 거니까 집 뒤에 말고 현관앞쪽에 심어야겠어요. 문 열고 나가면 바로 보이니까 돌보겠죠.'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주고받은 대화다. 직접 키운 작물을 이용한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니 텃밭을 포기할 수 없다. 먹는 재미와 키우는 즐거움이 그냥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내년에 누가 키워도 잘 자라는 방울토마토, 가지, 가지고추와 호박,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콩과 옥수수를 심을 예정이다. 미리미리 퇴비로 땅물 비옥하게 만들고 모종을 사다 심어야지. 게으른 농부랑 어울리는 종들만 선별해  심으려고 한다. 


 현관 앞 작은 허브밭에 방울토마토, 가지, 가지고추, 호박, 강낭콩, 옥수수가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허브와  텃밭의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애정을 보여줄게.



                         정성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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