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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Jan 09. 2025

쉼과 치유의 공간 미술관인가? 성당인가?

남양 성모 성지 성다


 "아가씨~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다녀왔어? 오빠 대자 부부가 초대해서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 기다리더라도 미사 끝나고 안수도 받고 와." 얼마 전에 만난 큰 올케의 말이다.

"아직요, 친구도 엄마 모시고 갔었다고, 엄마가 너무 좋아하셔서 효녀 노릇하고 왔다고 했어요."

이처럼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양성모성지를 추천했다. 그래서일까, 요당리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후 남양성모성지로 갈지, 반대로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남양성모성지로 향했다.


  남양 성모 성지는 병인박해(1866년) 때의 순교지이며, 1991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어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성모 성지로 공식 선포된 곳이다. 

  남양 성모 성지에는 성지 전체에 20단 묵주를 펼쳐 놓은 듯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지름 0.7m 돌묵주 알들이 4.5m 간격으로 놓여 있어 순례자들은 그 묵주 알들을 한 알씩 짚어 가며 묵주 기도를 바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중 발췌>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 붉은 벽돌 기둥 두 개가 인상적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 앞에 우뚝 솟은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그는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며, 이곳에서 전통적인 성당 건축의 요소와 현대적 감각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우리나라에 마리오 보타의 작품으로 교보문고 강남점과 리움 미술관이다. 빨간 벽돌을 사랑한 건축가.

 특히 이 성당은 이상각 신부님의 오랜 염원과 노력으로 완성되었다. 이상각 신부는 1989년 남양성당 부임하면서 남양성지와 인연을 맺었다. 1991년 신부님은 성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 성지를 조성하고자 했으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특별한 성전 건립을 기획했다. 지금의 모습은 35 년에 걸친 한국 가톨릭의 새로운 상징이 될 성당을 건립하는 꿈의 완성이고 여전 그 꿈의 실현은 계속되고 있다. 단순한 종교 시설을 벗어나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랜드마크로 만들고자 했으며, 모든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1층 소성당

1층 소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밀려왔다. 모든 감각이 제대가 있는 정면으로 집중되었다. 검은 벽면에 홀로 빛나는 십자고상과 파란 벽면 앞의 현대적인 성모상, 그리고 심플한 제대는 군더더기 없는 공간 구성으로 본질만을 남긴 듯했다. 예수상은 1400년대의 작품이고 마리오 보타의 소개로 남양성모성지에 오게 되었다. 마지막 숨을 후하고 내 쉬는듯한 십자고상을 보면 저절로 손을 맞잡게 된다. 제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소성당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인자한 모습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 남양 성모상은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려는 모습 같다. 웃는 얼굴의 귀여운 아기 예수는 엄마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고, 그 모습은 엄마를 향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 주고 있다. 나도 아기 예수처럼 성모님을 향한 완전한 신뢰를 보내고 싶다.

2층 대성전

 

천상에 이르는 계단이라 불리는 곳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하늘나라에 가까이 다가가는 설렘이 있었다. 대성전 안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아치형 천장과 예수상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인 눈 뜬 예수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는 듯했다. 이는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고난의 파사드에 있는 수비라치의 예수상을 연상시켰다. 제대 정면의 일렬로 된 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트러스 구조 사이에 있는 천창을 통해서도 빛이 들어왔다. 빛과 소리로 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두 개의 기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 궁금하고 보고 싶다. 제대 양면에 아크릴화가 있다. 왼쪽엔 성모님의 수태고지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모습을 오른편엔 최후의 만찬이다. 재킷을 둘러쓰고 있는 자가 유다일까?

줄리아노 반지의 작품

 

 성당 양쪽으로는 다양한 모양의 성모상들이 있고, 그 앞에는 묵상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베들레헴 동굴돌, 골고타돌, 성모님 무덤돌과 예수님 무덤돌이다. 이는 1977년부터 35년간 이스라엘 성지 소임을 담당한 안선호 베다 신부가, 이스라엘 성지를 수리할 때 나온 돌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기증한 것이다.

  성전 밖으로 나오면 반달 모양의 마당이 있고, 마당을 연결하는 계단도 멋지다. 대성전의 외관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경가인 정영선의 작품이 겨울이라 그 진가를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분명 남양성모 성지에 맞는 정원이 형성되었을 텐데.


 나오는 길에 만난 양면이 유리로 된 초봉헌소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산을 향해 난 커다란 창을 통해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차경의 미학이 돋보였고, 그곳에는 남양의 성모상이 있다. 초봉헌소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를 위해 초를 켜놓고 와야 할 것 같아, 특별히 남편을 위해 초를 봉헌하고 왔다. 



 낡은 안내도를 만났다. 남양 성모 성지는 지금의 모습을 하기까지 1991년, 1993년과 1997년 세 차례의 대대적인 토목공사와 여러 번의 공사를 했다.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 길과 광장은 설계도면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야산을 파서 조성한 길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이 길의 모습은 자비의 성모 이콘과 너무 닮았다. 특히 성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기 예수님의 머리 부분처럼 보이는 무덤의 모습은 놀랍다. 무덤을 끝까지 팔지 않아 무덤을 가리기 위해 주변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아치형 천장의 곡선미와 정제된 디자인, 그리고 빛의 활용이 조화를 이루어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기도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대성전도 아름답지만 나에겐 소성당이 더 마음을 흔들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십자고상, 한지로 된 마감벽, 남양 성모상까지 심플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소성당이다. 이런 아름다움과 영성이 깃든 남양성모성지는 분명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다음에는 꼭 미사 후의 안수도 받고,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이 담긴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고 싶다.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 길도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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