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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Jan 02. 2025

한 달 먼저 만난 새해, 갈매못에서 만난 다섯 성인

갈매못순례성지

얼리버드가 아니라도 가톨릭 신자라면 새해를 한 달 먼저 시작한다. 최근에는 새해를 1월 1일이 아닌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전례력 이란 가톨릭교회가 전례를 지내는 달력이다. 전례란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큰 사건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예식이다. 40년 차 신자이면서도 한 달 먼저 시작하는 전례력이 그동안 내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전례 봉사를 했음에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2024년에는 이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 달을 먼저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기회로 느껴졌고, 머릿속에 한 달 동안 할 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월 한 달 동안 되돌아보고 2025년을 준비하면서 보냈다. 충청도 보령 바닷가의 갈매못 성지에서 한 달 앞서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갈매못은 조선시대 수군들이 주둔하는 군사 요충지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등 다섯 성인과 무명 순교자들이 순교한 바닷가로 한국 교회의 순교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곳이다. 이들은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조선 왕실이 경사를 앞두고 있어 서울 인근에서 피를 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여 멀리 보령 갈매못으로 보내져 처형되었다. 다섯 순교자는 갈매못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1866년 3월 30일에 참수되었다. 그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성금요일이었기에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을 봉헌하였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중 발췌>


12월로 접어드니 성지 순례를 다니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바닷가이고 겨울이라 갈매못의 분위기는 어두운 블루였다. 이런 날씨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제격이다. 굴에 관련된 음식점이 여러 곳 있었다. 그중에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을 골라 들어가니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대기가 있었다. '맛집은 대기가 기본이지'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이 뭘 시키나 눈으로 스캔을 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굴 칼국수를 주문 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배가 많이 고팠다. 지금까지 본 굴 칼국수 중 굴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고 양도 많았고 맛까지 좋았다. 

승리의 성모 성당 올라가는 길

배가 든든한 상태에서 갈매못 성지로 향했다. 갈매못 성지에 가니 다섯 성인의 참수 터와 처음으로 안장했던 터와 기념관 등 의미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승리의 성모 성당까지 올라가는 길에 더 눈길이 갔다. 검은색 벽돌로 된 낮은 담 위에 청동으로 된 십자가의 길이 있다. <갈매못 성인들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이란 작은 책자가 사무실 앞에 비치되어 있다. 사용 후 반납을 해야 하는 데 가방에 넣은 채로 가져왔다. '잊어버리지 말고 가져다 놓아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나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다. 다시 한번 갈매못을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십자가의 길 1~!4처



갈매못 성지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순교한 다섯 성인들의 말씀과 행적을 알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작은 상 뒤로 펼쳐진 흐린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청동상들이 주는 감동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바다와 조화로운 작품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했다. 14처 가 끝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계단을 올라가면 승리의 성모 성당을 만난다. 승리의 성모 성당 입구에 성체 조배실이 보였다. 작은 공간엔 감실 뒤 십자가와 돌아온 탕자, 그림 부활초와 다섯 성인의 사진이 있다. 감실과 겹쳐 있는 십자가가 오서 오라고 해 앉아있다 나왔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벽 쪽으로 다섯 성인의 흉상과 함께 성인들이 했던 말씀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하얀색 계단으로 된 반원형의 야외미사석이 마련되어 있다. 반원형 끝까지 가면 다섯 성인의 순교자가 부조로 된 작품들이 있다.




성체조배실




승리의 성모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제대 쪽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독특하다. 누가 보아도 나뭇가지 사이로 다섯 성인이 보인다. 바닷가에서 순교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 같다. 교우들이 나무 뒤에서 숨어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양쪽으로 열려 다섯 명이 숨진 바닷가를 볼 수 있다. 열린 문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며 주임 신부의 말을 들었다. "선교사들이 멀리 와 순교를 한 것을 안타깝게 여기지 말라. 다섯 성인의 순교의 영광을 생각해라. 또한 저 바닷가에서 죽은 무명 순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분들들을  통해서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길을 바랍니다."


성당 오른편 쪽 성인 유해 공경실이 있다. 5분의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곳인데 유해는 4분만 있다. 황석두 성인은 영정 사진만 있고 유해는 없다. 황석두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충청도 보령의  서짓골 성지에도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와 장주기 요셉을 기념하는 4성 제대가 있어 궁금했다.


서짓골은 현재 보령시 마산면 평라리에 있다. 1866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참수된 다블뤼 주교와 루카 위앵 신부와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와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의 시신이 모래자갈 속에 방치되었다. 그 뒤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등 순교자 4위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신자들에 의해 9월 1일 이곳에 묻혔다. 목숨 걸고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한 서짓골 신자들은 체포되어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한국 천주교 성지 순례 중 발췌>


다블뤼 주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귀국할 때 같이 와 충청도 신리성지에서 주로 서적편찬을 했다. 복사였던 황석두 루카랑 병인박해 당시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고, 위앵 신부와 오매트르 신부는 각자의 사목지에서 숨어서 활동을 하다가 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었지만 국혼을 앞두고 있어 갈매못까지 와 처형되었다. 이때 충청도 제천 배론에서 신학교 관리를 했던 장주기 요셉도 서울에 있어 같이 움직였다. 배론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장주기 성인이 갈매못에서 처형당한 이유였다.

갈매못에서 처형당한 5명은 승리의 성모 성당에서 보이는 반대편 쪽에 하얀 십자가 있는 곳에 3일 동안 장대에 걸려 있었다. 포졸들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신자들은 목숨을 걸고 조심스럽게 시신을 수습했다. 황석두 루카의 유해는 아들과 조카가 삽티로 옮겨 안장했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둘은 관아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


4명의 유해는 여우가 구멍을 내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해야 했다. 신자들은 발각되지 않도록 밤에 배를 이용해 서짓골로 옮겼다. 4분의 유해는 그 후로도 계속 이동했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지 16년 후에 시신을 수습해 일본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으로, 1894년 용산 신학교로, 1900년에 명동 성당으로, 마지막으로 1967년에 절두산에 안장이 되었다. 시신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8월 성지순례를 시작할 때는 기도의 내용이 "000 해주세요."라는 청원이 많았다. 요즘은 "여기 데려다 놓아서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기도는 예수님께 시간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예수님께서 내게 하고자 하는 말씀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에 옮기거나, 때로는 그저 마음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던 감정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여전히 궁금하다. 한국 성지순례에 있는 167곳을 다 다닌 후에는 어떤 변화들이 있을지 말이다.

한 달 먼저 시작하는 전례력 덕분에, 24년 마무리를 뜻깊게 할 수 있었다.


TIP

갈매못 순교 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 해안로 610

미사 주일-오전 8시, 11시 30분/평일 11시 30분 (월요일 미사 없음)

성지 개방 시간 3월 ~1월 오전 9시 ~오후 6시/12월 ~2월 오전 9시 ~오후 5시 30분 

굴 칼국수 맛집 -먹쇠네 굴집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홍보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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