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따고 나서야 시작된 진짜 이야기

by JF SAGE 정프세이지

50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생전정리지도사. 생소한 이름이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직업이다.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정리하고, 어르신들의 인지활동을 돕는 일이다. 50대 중반, 새로운 일을 찾고 있던 나에게는 의미 있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막상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현실의 벽이 보였다.



자격증은 시작일 뿐


생전정리지도사 자격을 취득한 지 한 달.

강의 내내 김혜숙 강사는 강조했다.


"공부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마세요. 이걸 이용해 일을 하세요."


수업을 들으며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코칭을 할 것인지, 전문강사가 될 것인지, 현장에서 일을 할 것인지. 속표지에 단어들을 모아가며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정리수납에서도, 인지활동지도에서도 초보를 써줄 곳은 없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이 업계에서도 신입은 안 뽑고 경력직만 필요한 걸까?


박기선 강사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자원봉사부터 시작해서 경력을 만들어. 2~3년만 버텨봐. 제안서 들고 기관이나 업체를 돌아라."



첫 현장의 설렘과 떨림


운이 좋게도 수강생들은 주거개선사업에 한 번씩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원래 팀이 취소되어 다른 팀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 일을 하기 전 기대에 찬 설렘과 다른 팀원들에게 민폐를 줄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드디어 일하는 날. 15분 전, 지원자 아파트 입구가 만남 장소였다. 앞을 가리며 내리던 비도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먼저 도착해 보니 검정바지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약간의 긴장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정선례입니다."

"네, OOO입니다. 오늘은 집에 살림이 별로 없어서 빨리 끝날 수 있어요. 팀장님 역량에 따라 빨리 끝내거나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도 있고요."


3명의 완전체가 되어 지원자 댁으로 올라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만나 하루 내내 함께 있어야 한다니, 긴장이 되었다.



작은 변화가 만드는 큰 차이


들었던 말대로 주방에 살림이 많지 않았고, 지원자는 싱크대와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것들을 정리하기를 원했다. 팀장은 먼저 둘러보며 자리를 정하는 듯했다.


식탁과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식탁 위 음식들을 꺼내 분류를 시작했다. 라면과 면류, 간식과 견과류, 즉석식품, 가루들을 포함한 양념류, 영양제와 약 등으로 나누었다.


빈 수납장을 물티슈로 닦았다.

'살림을 못한다'라고 하던 말과 달리 상태가 깨끗했다. 먼지도 없었다. 평소에도 관리를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장은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부채꼴 수납장 때문에 주방이 좁고 어수선해 보였는데, 그것을 뒷베란다 쪽으로 빼고 매실병들은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일회용품이나 간식을 보관하는 수납장을 그쪽으로 옮기니 깨끗하고 공간이 더 넓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공간이 생기는구나. 일을 하다 보면 나도 이런 눈이 생기려나?



경력을 쌓기 위한 여러 갈래 길


첫 현장 경험 이후, 본격적으로 경력 쌓기에 나섰다. 생전정리는 공간정리와 더불어 삶의 정리를 포함하는 개념이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우선 자원봉사부터 시작했다. 동아리 '평나비'를 통해 장애인 부모님을 위한 정리수납 강의 기회가 들어왔다. 또한 인지활동 분야에서는 경기도 도립노인전문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봉사를 시작했다.


평생학습센터 강사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 1년 후와 해당 분야 활동시간 56시간이 필요했다. 목표가 생기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인지활동강사 파견업체인 여럿(주)에서 연락이 왔다. 생전정리지도사 과정이 끝나기 전 면접을 보았던 곳이다. 모집 분야가 음악이라고 해서 다른 영역에 결원이 생기면 불러달라고 했다. 다행히 8월부터 목요일 2타임과 금요일 1타임 수업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일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는 거라 긴장이 많이 되었다. 삼치인 내가 손유희, 시작체조와 마무리체조를 잘할 수 있을까? 여럿 실장님 앞에서 시연을 하며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았다. 집에서는 영상을 보며 노래도 하고 율동도 따라 했다. 율동이 어려우면 단순화시켰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더 긴장하는 걸까?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 뇌의 노화가 느려진다니 기쁜 마음으로 하자고 다짐했다.


선배들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


봉사만으로 경력을 채우기에 답답해하던 우리들에게 박기선 강사가 제자를 소개해주었다. 혼자 자리 잡느라 힘들었던 그 힘듦을 줄여주고 싶어 다 알려주겠다며 실제로 자신의 활동들과 내 이력을 듣고 컨설팅까지 해주었다.


여럿에서 먼저 일을 시작한 진옥이가 들려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선생님, 여럿에서 만난 다른 선생님들 다 좋아요. 알고 있는 것들 다 나눠주고 도움을 주려고 해요."


기본적으로 이 일을 하는 분들은 그런 소양을 갖고 있나 보다. 직업이기도 하지만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현실과 마주한 순간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봉사를 통해 경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인지 궁금했다. 시간이 가면 정말 우리가 일할 곳이 생길까? 이런 궁금함이 너무 절실했다.


그런 마음으로 같은 동아리인 영민, 진아와 함께 수원으로 향했다. 선배에게 더 구체적인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월요일 4시 30분 약속 장소로 갔는데, 기다리는 중에 전화가 왔다.


"지금 활동 중에 다치신 분이 있어서 병원에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차와 달달이를 먹으며 수다를 떠는 중에 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는 귀가해도 된다고 하는데 할머니들이 CT를 찍어봐야겠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만나기 힘들겠다고 했다.

도움을 받으려고 왔는데 만나지도 못하고 가야 하니 난감했다. 힘들게 시간을 내서 온 민주는 많이 실망한 듯했다.


"맛있는 거나 먹고 가자."


근처를 검색해 가까운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먹으면서도 이 상황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던져봤다.


"멀리 수원으로 소풍 왔어. 언니랑 드라이브 온 거야."



그래도 계속 걸어가는 중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 예상치 못한 변수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


50대에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현장에서 느꼈던 그 신기함, 작은 변화가 만드는 큰 차이를 목격했던 그 순간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력이 없어서 문을 두드리기 어렵다면 자원봉사로라도 시작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배우며 성장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과 함께 이 여정을 이어가자.


자격증은 끝이 아니라 진짜 시작이었다. 지금도 나는 생전정리지도사로서의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일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용기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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