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는 날, 삶이 완성된다

우리의 장례가 품격을 회복할 때

by JF SAGE 정프세이지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장례식은 축제 같았다. 시골 큰집 마당에 차양을 치고 손님들을 대접하고 동네 아주머니들은 요리를 하고, 친척들이 모여들어 마치 동네잔치 같았던 풍경. 상여가 나갈 때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선창과 후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산소까지 함께 걸었다. 그때는 슬프다기보다 들떠 있었다면, 지금의 장례식은 근엄하고 무겁다.


최근 송길원 목사의 책 <죽음이 품격을 입다>를 읽으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장례식의 모든 것들 (삼베 수의, 염습, 완장, 국화꽃)이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식 관습이라는 것이다. 1934년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놀라운 건 삼베 수의의 진짜 의미였다. 조선시대 삼베수의는 죄인을 나타내는 옷이었고,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다'라는 뜻으로 입는 옷이었다. 조선시대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으로 관리는 관복, 선비는 하얀 심의, 여성은 혼례복이었다. 주된 소재가 비단, 명주, 무명과 모시였다. 일제는 전쟁 물자 부족을 핑계로 삼베로 바꿔버렸다. 1945년 광복 직후 새로운 법령을 정비할 여력이 없어 기존 일본식 법령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 왜곡된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1945년 일본으로 돌아가며 한 고별연설은 섬뜩하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사람으로 살 것이다." 장례문화의 왜곡 역시 이런 정신적 식민화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내 장례식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값비싼 수의 대신 내가 좋아하던 옷을 입고 , 획일적인 모양의 꽃장식 대신 내 삶이 담긴 메모리얼 테이블을을 마련하면 좋겠다. 형식적인 조문 대신 가족끼리모여 나에 관련된 추억들을 나누길 바란다. 이런 것들이 장례를 더 의미 있게 만들지 않을까? 잘 살다 간 사람을 존중 하는 모습과 건강한 이별이 가능한 장례식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우리의 장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헨리 나우웬이 말한 '가장 좋은 죽음은 다른 사람과 결속하게 하는 죽음'이 답을 준다. 결속의 키워드는 용서와 화해이다. 장례는 고인과 남아있는는 사람들을,남아있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이다. 실제로 시어머니와 엄마의 죽음을 통해 가족들이 더 끈끈해졌고 슬픔보다 감사의 마음이 훨씬 컸던 경험을 했다.


과거 우리의 장례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한 가족의 일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행사요 축제였던 것이다. 지금처럼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주축이 되어 획일적이고 상업화된 절차가 아니라, 고인과 가족의 삶과 이야기가 존중되는 의식이었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2022년과 2023년 발표를 통해 현실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추석 차례상에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되고, 제사 시간을 초저녁으로 조정해도 되며, 부의금도 십시일반 마음을 담은 5만원이면 충분하다는 권고다. 사전장례의향서를 통해 스스로 사후 존엄성을 지키는 문화 조성도 권장하고 있다.


박노해의 시다


꽃이 지는 건 꽃의 완주이듯

죽음은 삶의 완성일 뿐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

삶의 반대는 다 살지 못함이다


죽음이 삶의 반대가 아니고 삶의 완성이라고 여긴다면 지금처럼 죽음을 멀리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삶에 대해 더 진지해질 수 있다. 모두가 진정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완성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더 온전히 살게 하는 거울이자, 남은 사람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순간이다. 어린 시절의 장례식처럼, 고인과 남은 이들이 함께 연결되는 의식을 꿈꾸며, 우리는 젊어서부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죽은 자가 주인공이 되고, 사랑이 전제가 되는 장례식. 그것이 진정 품격 있는 죽음이 아닐까. 오늘도 감사와 은총을 기억하며, 삶을 한껏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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