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아래에서 나누는 情談

경아동생 부부

by 장현수

가꾸고 있는 사과 과수원에서 고양이 세마리가 뛰놀고 있다.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서쪽 하늘 아래 불그스럼 먹물이 번지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각각 엄마, 언니, 그리고 아기다. 엄마하고 언니는 흰색 검은색 털을, 아기냥이는 흰색 짙은 회색 털을 가졌다. 이들은 우리 과수원이 놀이터다. 나무도 곧잘 타고 오른다. 서로가 엉겨붙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언니 냥이와 아기 냥이가 그럴 때 엄마 냥이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며 그르릉 작은 소리를 낸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세지인 듯.


이들 냥님들의 주인은 우리밭 옆집에 집짓고 사는 어릴적 동네 후배 경아동생네 부부다. 우리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들 냥님들이 창고안 그들의 안식처에 있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에 궁금해 하며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는 하나씩 뛰쳐 나와서는 과수원으로 달려가 앞발로 흙을 파헤치기도 하고 서로 맞잡고 뒹굴기도 한다. 그리고 일말의 부끄럼도 없이 대놓고 뒤를 보기도 하며 살금살금 기듯이 다가가 벌레도 잡는다.


경아동생이 한마디 한다. "오빠 밭은 우리 집 정원 이라예" "고양이들한테는 놀이터고예"


이들부부는 타지에서 살다가 다시 경아동생 고향인 이곳으로 들어와 터잡고 산다. 남편 손사장한테서야 여전히 타지일 값에라도. 손사장이 나처럼 사과 농사를 처음시작한지는 10년이 더 되었다. 경아동생은 인근 시내에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한다.


사과농사에 초보자인 내가 유튜브를 통해 안 지식을 사과에 적용할 때는 늘 손사장한테 먼저 물어본다. 그러면 손사장은 내게 십중팔구 이렇게 말해준다. "유선생(유튜브) 말믿고 그대로 하면

행님 죽습미더" "그냥 옆집 밭에서 머하는지 보고 따라하머 됩미더"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리밭 옆 지은 집 창고는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쉬다가는 장소다. 밀크커피 한잔 대접은 기본이다. 내가 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붙임성 좋고 인사성 밝은 경아동생이 크게 나를 부르며 인사한다. "오빠예 안녕하세요~ 커피한잔 하고 하이소"

그러면 나는 "좋지"하고 얼른 하던 일 멈추고 부르는 곳으로 간다. 꾸물럭거리다가 커피한잔 놓칠까 싶어서~ 사실은 혈당 조절하느라 밀크커피 마시면 안되는데 이들이 베푸는 최상의 대접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미안하고 감사한 이웃이다.


3년전 우리 사과 밭은 아무도 돌볼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나로서도 병구완 해드리느라 틈을 낼 수가 없었다. 11월 중순은 되어야 사과가 수확기인데 한창 영글어야 할 시기인 유월에 벌써 사과 밭은 절단났다. 돌보지 않은 사과나무들이 생리장애를 일으켜 잎들이 모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잎이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었던 사과 열매는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 방울토마토 크기로 익지도 못한 채 맨가지에 달랑달랑~ 모두 눈물로 폐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경아동생 부부가 눈앞에서 모든 것을 지켜 보았을 그 해 그 여름 캄캄한 어둠의 풍경이었다.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 심정 또한 어땠을까.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한 이웃이 되어 나로서도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작년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사과 농사를 해보겠다고 했지만 언감생심. 떡 줄 놈은 따로 있다는 듯이 이번에는 꽃이 안오네~ 하나도~

일년 내 나무 가꾸기만 했다. 다가올 내년을 기약하면서. 경아동생이 이야기 해준다. "오빠 그때 사과나무 잎 다 떨어진 것은 약이 너무세서 그랬던거 같애예. 오빠 내려와 약한번 치고 올라가고 나면 잎이 마르고 난리였어요. 11월에 난데없이 꽃을 피우기도 했다니까요. 다음해 봄에 펴야할 꽃이 나무가 혼란을 일으켜 미리 다 펴 버렸던 것 같애예" 농사 초보꾼이 작물에 얼마나 위험한지 나를 통해 다 안다. 손사장은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 하이소 하고 나를 위해 말해준다.


손사장은 이야기 꾼이다. 내가 현직에서 알고 있었더라면 초빙강사로 불러 모셨을 것이다. 큰 제과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과자 판매에 관한 노하우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과잉 생산된 과자를 그가 대리점으로 넘겨야 할때 공장에다 한꺼번에 많이 나온 이유를 확인해 보았다고 한다. 공장에서는 재고 밀가루 유효기간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아서 밤새 공장을 돌려 한꺼번에 제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제조한 과자는 새로 만든 과자가 되어 유효기간이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때는 나로서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또한 과자를 군납하면 반 값 밖에 못받는데 그러면 과자회사가 손해보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 보았을 때는 "행님 그거는 세금이 없다 아입니꺼. 세금 안내고 파는 건데요 뭐"하고 바로 답이 나왔다


이들 부부가 작년 가을 무렵부터 내게 해주던 말이다. 얼마나 그 말들로 인해 힘이 되던지. 우리밭 사과나무 가지를 만져가며 "행님 사과나무 꽃눈이 많이 생겼는데요. 이 보이소. 여도 저도 내년에 다 핍미데이" 이러면 옆에있던 경아동생은 "오빠 내년에 사과 마이 달리머 우째할랍니꺼. 실어 나를려면 차도 한대 사야 안되겠습니꺼"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고마웠다. 나는 속으로 좋으면서 괜히 "아이고야 그거야 내년에 가봐야 알지 지금 봐서 알 수 있나"하고 말꼬리를 슬며시 흐려본다.


정말이었다. 그들의 말은 진짜였다. 올 봄엔 작년에 피지못한 한 풀이라도 하듯 꽃이 무척 많이 왔다. 할 줄 몰라 손으로 수정작업을 하지 못했음에도 벌님들이 양 사방에서 날아 오셔서 가지마다 늘어지도록 많은 열매가 달리게 해주었다. 감사한 벌님들~ 맛있는 거라도 사주고 싶다.


경아동생이 "보이소 오빠예. 내 말이 맞지예" 하고 엉거주춤한 나를 툭 치며 깨우친다.

"그래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맞네. 고맙다" 울컥해지는 마음이었다.


이로써 기쁘고 감사한데 또한 걱정 거리가 하나 생겼다. 한 꽃봉오리에서 두 개이상 일곱 개까지 달리는 사과 열매 중에서 오직 한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솎아내야 한다. 허걱~ 이 많은 열매를 혼자서 도대체 언제 다? 그러나 손사장이 시범도 보여주고 요령을 알려 준 덕분에 쉽게 마칠 수 있었다.


"오빠 도토리 묵 좋아 하지예. 애들 아빠는 씁쓰름 하다고 잘 안 먹네예. 엄마가 만든 깁니더"

이렇게 맛있는 진한 도토리 묵은 처음인 것 같다. 도토리 로만 만든 진짜 도토리 묵이었다. 경아동생 한테 묻고 싶었다. 손사장이 잘 안 먹는 거 또 뭐 없나~ 일하러 나올 때 간식을 자주 챙겨 나오는데 나 먹자고 가져오는 것은 물 밖에 없다. 다른 것은 경아동생 부부 주고 싶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밥도 사주고 싶고 그들과 좋은 카페가서 차도 대접해 주고 싶다. 그렇지만 농사는 일년 내내 바쁜 법이다. 그래도 그럴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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