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귀촌 귀도(?)

by 장현수

면사무소 근처에 자주가는 철물점이 있다. 밭을 맬 때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나의 1호품 긴 장대호미도 여기서 샀다. 시골이라 한다리 건너면 누가 누군지 금방 알게 되는데 처음 본 사장님도 듣고보니 중학교 몇년 후배이다.


그는 철물점에서 농자재를 팔면서 누가 새로 귀농 귀촌하신 분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귀농 귀촌하신 분들은 철물점에 와서 이런 저런 필요한 농기구를 마구 사가신다. 그리고 수시로 오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철물점에 더 이상 발걸음이 없다면 그 분은 도시로 다시 '歸都(귀도)'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속으로 예외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 시골이 내게 아무리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날 어떻게 짐을 싸게 될지 장담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가족들이 모두 서울에 있고 나만 고향으로 내려와 있는 상태다. 물건을 사든지 사지 않든지 철물점을 자주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결국 '그도 고향을 등지고 말았다'는 오해를 사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 귀촌을 하시는 분들이 대개 시골에 내려와 잔디 정원을 갖춘 멋진 집을 먼저 짓는다. 알록달록 지붕도 예쁜 색이다. 마치 체코 체스키크롬로프의 중세 때 지은 건물지붕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들은 채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골에 이사와서 좋은 집을 짓고 처음에는 자랑삼아 도시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직장동료들을 불러 잔디밭 정원에서 밤에 불밝히고 삼겹살 파티를 열며 즐겁게 지낸다. 마당가 텃밭에는 대충 씨를 뿌려놓고 물만 줬을 뿐인데도 상추가 얼마나 잘 자라는지 뜯어도 뜯어도 또 다시 자란다. 그때마다 그들은 시골에 온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슬슬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든다. 보이지 않던 벌레들이 여름이 되자 집안 이곳저곳에서 나와 기어 다닌다. 밤이 되면 깜깜하고 길은 어두워 다닐 수가 없다. 갈만한 카페도 없다. 희안한 새소리가 밤에도 들려와 무섭다. 낮에도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불쑥불쑥 들어와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우리 사과밭 옆에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와서 땅을 사고 멋있는 목조가옥을 지었다. 예쁜 잔디밭 정원도 꾸몄다. 잔디밭 정원 가운데로는 자잘한 몽돌을 깔아 운치있는 길을 만들었다. 비싼 제주도의 야자수도 하나 가져다 심었다. 울타리는 동백나무로 빼곡히 채웠다. 대문은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허리보다 낮은 작은 나무대문으로 멋을 내었다. 마당 구석구석마다 사시사철 종류를 알 수 없는 예쁜 꽃들이 피었다. 그러나 그는 도시에 가족들과 사는 아파트가 따로 있었다. 이 집은 그의 세컨 하우스 격이다. 시골에서 살고 싶지 않은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이사를 올 수 없다는 말이 돌았다.


집을 짓고 나서 매 주말마다 가족들과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 왁자지껄 파티하며 지내던 그 인상좋아 보이던 아저씨는 몇 년째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결국 아내의 동의를 아직까지 받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딸을 위해 조그마한 방이 있는 독채를 본채 옆에 하나 더 짓고 싶어 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집을 내어 놓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분을 만나면 우리 밭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그 분의 작은 텃밭(10평정도)을 흥정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중년에 사귄 예쁜 여자와 몰래 살기 위해 대출받아 시골 좋은 자리에 펜션처럼 예쁜 집을 지었다. 그러나 일년도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바람이 났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붙들 수가 없었다. 낙망한 남자는 그 여자를 기다리며 그 집에서 홀로 끝까지 버텨 보다가 포기하고 결국 또 다른 여자를 찾아 그 곳을 떠났다. 얼마 후 그 집은 경매에 부쳐져 반값도 되지 않는 가격에 누군가 낙찰 받았다. 누군들 그 집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기를 바란다.


여름이라도 해가 지고 나니 한낮의 무더위가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사과밭에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에 집을 나선다. 손에는 손사장네 새끼 고양이 줄 간식 캔을 하나 들고.


밭으로 가는 길 옆 새로 이사 온 집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듯 시끌벅적 요란한 사람소리가 났다. 대낮처럼 불빛이 환했다. 시골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의 소리도 들렸다.


이 집은 원래 교직에서 퇴직한 노부부가 새 집을 지어 이사와서 살던 곳이다. 이제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비어 있던 집을 어떤 분이 이번에 사서 이사오신 것이었다. 물론 세컨 하우스로 말이다.


새로 온 주인은 단층이었던 집을 이층으로 올리고 많은 돈을 들여 개보수를 했다. 시골에 귀농 귀촌으로 오시는 다른 분들처럼 예외없이 마당에 잔디를 깔고 넓적넓적한 화강석 얇은 돌을 놓았다. 마당가 감나무 아래에 정자를 새로 지었다. 담장 아래로 여러가지 화초를 심고 가꾸었다. 부지런한 분이셨다. 그런데 집 옆에 산소가 있어서 아내가 무섭다고 한다는 말은 이웃을 통해 들었다. 이 집 또한 벌써 이 곳을 떠날 이유가 생기고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반년도 안된 시점이다. 그나저나 우얘끼나(우짜든동 즉 어쨋거나) 이 곳의 탁 트인 전망, 좋은 경치와 맑은 공기 그리고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며 우리와 좋은 이웃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어둑해진 사과 밭 옆 창고에서 고양이들이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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