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집집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었다. 더운 여름에 동네 아이들은 시원한 그늘이 있는 마을 앞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자주 모여 놀곤 했다. 뭐 하며 노느냐고? 딱지 쥐기 놀이와 어른들 장기와 비슷한 아이들 놀이인 '꼰'두기, '찰깨'라고 부르던 공깃돌 놀이 등이 있었다.
근처 감나무에서는 매미가 와서 쉴 새 없이 울어 댔다. 7~8월은 아이들 여름 방학이었고 옥수수가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이었다.
어느 날 이곳에 광주리를 이고 사과를 팔러 다니는 한 아주머니가 오셨다. 더워서 잠시 쉬다 갈 참이었다. 그때는 사과를 능금이라고 불렀는데 대구능금 경북능금이 귀에 익은 사과였다.
시골에서는 사과가 귀했다. 설이나 추석 그리고 집집마다 가끔씩 있는 제사 때 외에는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아주머니가 이고 온 사과를 보자 옆에서 놀고 있던 서너 살 되는 작은 아이 하나가 갑자기 사과를 사달라며 자기 형에게 떼쓰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없던 아이의 형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계속 칭얼거리기만 했다.
얼마 후 아주머니가 쉬고 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광주리를 잡고 머리에 이면서 하필 나에게 이는 것을 도와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아주머니 앞에 마주하고 서서 광주리를 잡고 들어 드리게 되었다. 광주리를 들어 올리는데 눈앞으로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고 온통 빨간 사과만 보였다. 순간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과를 하나 슬쩍 뺐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이고 힘주어 벌떡 일어서자마자 눈앞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뭐? 사과를 훔쳐 들고 꼼짝없이 서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만약 등 뒤로 짐을 들어 드리는 상황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숨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나를 향해 고맙다며 돌아보기 전에 일단 풀 숲으로 사과를 던져놓기라도 했을 것이다. 적어도 호주머니에 재빨리 넣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완전범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가야할 길을 향해 간다 해도 좋았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 볼 방법조차 없었다. 후드득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어쨌든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눈앞에서 아주 생생하게 마주하셨다. 나는 바로 현장범인채로.
화가나신 아주머니가 얼른 사과를 뺏고는 참 많은 욕을, 두서없이, 오랫동안, 들려주셨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욕들이 무슨 욕이었는지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고마운 것은 어른으로서 아이라고 때리지는 않은 것이다. 당황해서 그때는 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아주머니께 용서를 빈다.
이 일은 처음부터 내가 사과를 먹고 싶어서 훔칠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사과하나 먹고싶어 울고있던 그 아이에게 왠지 사과를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만약 아주머니가 내게 그 부탁만 하지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과 광주리를 들면서 순간적으로 무심코 저지른 일이었다.
그렇지만 도둑질은 나쁘다. 알면서 왜 그랬을까. 더구나 그 아이는 나의 동생도 아니고 가까운 친척집 아이도 아니고 우리 동네 할머니댁에 온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오래도록 진짜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의욕을 잃었고 하루하루가 까만색 투성이었다.
괜한 오지랖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나를 버려가며 참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했던 그 어린 날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한 여름 날 느티나무 아래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지금은 느티나무만 혼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