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행창구에서 벌어진 일

어떤 할머니 - 1부

by 장현수

일찌감치 마감시간이 지났음에도 마감전표 결재가 병수씨 책상 위로 수북이 올라 와 쌓여있지 않는 것은 창구에서 무슨 일이 생겼음에 틀림없다. 찾아오신 마지막 고객을 상담하고 있는 가운데 한 여직원 창구에 언니 뻘 여직원들이 왔다 갔다 부산하다. "김대리 뭐예요"하고 언니 뻘 직원을 향해 물었다. "아! 팀장님~ 그게..." 하고 말 끝을 흐리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고객이 눈치채고 늦었다며 먼저 일어섰다. 고객을 배웅해 드리고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구 여직원이 오늘 하루 유난히 북새통을 이루며 혼잡했던 창구에서 착각하여 그만 시재사고를 일으킨 것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은행직원으로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단돈 1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 여직원은 반 울상이 되어 있었다. 병수씨는 창구 거래를 책임지는 팀장이었다. 일단 걱정에 휩싸인 직원부터 안심시켰다. 이 것은 팀장이 책임지고 잃어버린 돈을 내일이라도 반드시 되돌려 받아 주겠다고 확약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200만 원이 비었다. CCTV를 여러 번 돌려 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결과 어떤 고객님과의 거래에서 발생했음이 밝혀졌다. 어떤 실수였든 100만 원 다발 두 개를 더 내어드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고객님은 얼마 전에 고위 공직자로 퇴직하신 분의 사모님으로 파악되는 분이셨다. 안도를 했다. 분명 젊잖은 분일 테니 인격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연락처를 찾아 핸드폰으로 사모님 고객님께 기꺼이 전화를 드렸다.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은행 측 잘못이라 죄송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리면서. 그렇지만 예상외로 고객님께서는 완강하게 부인하셨다.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냐고 화까지 내셨다. 해결이 난항에 부딪혔다. 순간 드는 생각은 아! 이제 큰일 났다. 답이 어렵겠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은행에서 줄곧 내려오는 말이 있다. 고객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 집에 갔는데 모자라면 언제라도(밤이라 할지라도) 다시 찾아 오지만 만약에 더 받아 갔을 경우에 그것을 돌려주겠다며 찾아와 주는 법은 절대로 없다는 말. 왜 이런 전통이 생겼을까. 그리고 이 순간 왜 이런 말까지 떠오를까.


이 경우 부득이 은행에서는 사고처리를 하고 가지급 정리로 일단 당일거래 마감을 하게 된다. 은행직원으로서는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일처리 방식이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지점 인근 고객님 댁을 병수씨가 직접 찾아 나섰다. 그러나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애써 찾아 간 집은 공교롭게도 비어 있었고 대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이웃에 알고 보니 퇴직하고 고향인 지방도시 00으로 부부가 같이 내려가셨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가끔씩 올라와서 머무신다고 했다. 현재 사신다는 지방의 주소지를 과거 거래 신청서까지 뒤져서 겨우 겨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다. 먼 곳이라 당장 찾아가 보기가 어려워서 이 분들의 주소지 근처에 위치한 은행지점에 근무하는 동기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선 확인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도 곤란한지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동기라서 쉽게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동기로 인해 고객님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또 한 번 무너졌다. 진짜 일이 풀리지 않는구나 하고 갈수록 낙담이 되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자꾸자꾸 멀어져 가는 듯이 보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봄이 되면 꿩이 알을 낳기 위해 보리밭 사잇길로 자주 나타나고 하는데 가까이 있어서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저만큼 포르르 날아가 버린다. 또 가까이 다가가 잡으려고 하면 또 저만큼 포르르... 결국 바라던 꿩은 잡지도 못하면서 엄한길로 멀리 떨어져 가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허탈하게 되돌아와야 했던 때가 있었다. 병수씨는 자꾸만 해결이 멀어져 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며 하루 종일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다음 2부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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