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무르익다
해마다 가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가에서 어머니께서는 종종 곳감을 말리곤 하셨다. 꾸들꾸들 해지고 말랑말랑 해질 때까지 밤에는 차가운 공기에 낮에는 따스한 햇볕에 널어놓기를 몇번이나 반복하셨다. 잘 말린 곳감은 불그스럼 투명한 속살을 감추며 겉으로 하얗게 분(粉)을 내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식구들의 좋은 간식이 되었다.
어김없이 올해도 가을이 찾아왔다. 그리고 계절의 끝자락에 닿아서야 가을사과 수확이 모두 끝났다. 아내와 딸 아들 가족들은 서울에서 직장일로 모두 바쁘니 여기까지 내려와 일일이 아빠를 도와주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혹시라도 아들이 내려오면 사과따는 일보다는 감따기를 맡기고 싶었다. 높은 가지에 달린 감은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 밑에서 긴 장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아들과 같이 감을 땄다. 그것이 아들과 함께한 귀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올해도 그러고 싶었다.
사과와 감은 따는 시기가 맞물려 있어 한꺼번에 같이 할 수 없다. 동네 곳곳에는 따지 못한 감들이 여러차례 서리가 내렸어도 여태껏 남아 있다. 더 늦기 전에 따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맘때쯤 감들은 보고 있노라면 공중으로 몽실몽실 떠있는 빨간풍선과도 같다. 빈 벽면에 두터운 유화물감을 한줌씩 척척 던져놓은 그림같다. 떨어지기 전에 홍시가 되면 새들이 날아와 즐거이 맛본다.
이웃하고 있는 동네 동생네는 벌써 사과 수확을 끝냈다. 이들은 이제 여유있게 감을 따와 창고 앞에 먼저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문 앞 따스한 햇살아래 부부가 마주앉아 다정하게 감을 깎았다. 쌓여가는 감껍질을 보자 어미 고양이 구월이와 딸 고양이 팔월이가 궁금해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연신 냄새를 맡다가는 내게로 와서 가랑이 사이를 맴돌았다. 맛있는 닭고기 캔 간식을 원하는 것이었다.
창고 지붕아래 가로로 길게 근굿줄(아기가 났을 때 시골에서 대문 위에 길게 쳐놓는 새끼줄. 줄에 고추 마늘 숯 등을 꽂아 놓음) 마냥 예쁜 곳감 휘장이 쳐졌다. 줄을 엮어 가지런히 매달아 놓으니 보기에 좋다. 휘렘술탄의 아름다운 이마를 둘렀던 한가닥 보석을 연상케 했다.
밭 옆으로 한그루 높게 서있는 벚나무에 단풍이 들면 바야흐로 사과 따는 철이 온 것이었다. 나무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믿고 따르는 전통이었다. 어느새 잎이 벌써 절반이상이 떨어졌다. 따지못한 사과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졌다. 혼자서 더디기만 했다.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날려와 발밑으로 톡 떨어졌다. 붉게 물든 잎이었다. 계절이 끝나가고 있다는 표시였다. 기온은 어느새 더 떨어졌다. 영하의 기온에서는 사과가 얼었다. 반드시 얼기 전에 따야 했다.
사과를 따서 집까지 운반은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사과 따는 시기에 사과를 따면서도 자주 한눈을 판 것은 다름아닌 감나무였다. 감나무는 우리 밭 맨 아래 끝자락
다른 사과나무들과 함께 서 있다.
단풍든 감잎과 불그스럼 익은 감은 가을이 주는 큰 선물이다. 가을 이른 바람에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오면 누이가 집 뜨락에 서서 중얼거리듯 혼잣말로 '오매 단풍들것네' 소리가 저절로 나올 법도 하다.
붉게 물든 잎사귀는 뽀득뽀득 윤기나며 빛깔이 곱다. 새 한복 잘 차려입은 새색시 같기도 하다. 매끌매끌 반질반질 질감조차 살아있다.
가지마다 달린 예쁜 감을 담고자 렌즈 3개를 갈아끼우면서까지 카메라를 들고 설쳐댔다. 그러나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그 모습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었다. 눈으로 보는 그 느낌을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 돌아서는 발걸음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늦가을 달린 감은 누가봐도 꽃인 것을... 예쁘고도 고운.
지인 권사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나누어 드린 감이 홍시가 되었다며 '밀양의 가을이 예쁘게 익었다'고 알려 오셨다. 백자 고운 접시에 담은 예쁜 홍시 사진도 놓칠세라 뒤따라 보내 주셨다.